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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덩굴과 아주 작은 나무

오늘은 자주조희풀 네가 날 물들게 한다

자주조희풀      Clematis heracleifolia var. davidiana Hemsl.

 

중부지방에서 허리 높이 정도로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갈잎떨기나무.

암수딴그루로 8~9월에 가지 끝과 잎겨드랑이에서 지름 4cm 정도의 꽃이 모여 핀다.

병조희풀(C. heracleifolia)의 변종으로 병조희풀보다 꽃받침조각이 넓게 벌어진다.

 

 

 

 

오늘은 자주조희풀 네가 날 물들게 한다는 김창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제목이다.

이 시집이 나오게 된 과정이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시인의 문우(文友) 몇 분이 야생화 탐사와 사진찍기에 취미를 붙이고

날마다 찍어온 꽃 사진을 메일로 보내면 시인은 그 다음날 멋진 시로 화답을 했다.

 

그렇게 되자 사진을 보낸 분들은 자연스레 꽃을 메긴다라고 했고 

메긴 꽃 사진은 다음 날로 아름다운 시로 재탄생을 했던 것이다.

그 시들은 하루 만에 썼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고 정교했다.

그렇게 몇 년을 쌓인 시가 천 편을 넘자 꽃을 메긴 분 중에 우계(愚溪) 이상옥(李相沃) 선생이

시집 발간을 제안했고, 그런 방식으로 시인이 작고할 때까지 두 편의 시집이 나왔다.

 

이 시집의 제목은 김창진 시인의 시 자주조희풀의 마지막 부분에서 따온 것이다.

시인은 자주조희풀 꽃의 푸른 빛에서 이국의 바다를 보았고 처녀의 입술을 보았다.

시인이 받은 감동은 다시 장독대에 두고 온 다알리아의 그 보랏빛으로 전이되어

기어이 그 꽃 빛에 흠뻑 물들어버렸으리라는 어설픈 짐작을 해 볼 따름이다.

 

자주조희풀의 꽃빛은 그와 비슷한 여느 꽃에 비해 다르지 않으나

시인의 눈에서 가슴을 거쳐 보석 같은 시어로 제련된 것이다.

이 시를 읽은 다음부터는 그 꽃이 예사롭게 보이질 않게 되고,

그 보석 같은 구절이 입에 맴도는 건 그만큼 명작이라는 방증이지 싶다.

 

(자주조희풀. 이시연님 사진)

이 꽃의 자주는 시어로 찬란하게 채색되었으나 뒤에 붙은 조희는 무엇일까?

조희는 종이의 옛말로, 예전에 동네 할아버지들도 종이를 조히조이라고 했다.

옛날의 종이는 닥나무 껍질로 만든 한지였고 닥나무 껍질 저피(楮皮)에서 유래하여

저피 - 조희 - 조이 - 종이로 바뀌었다고 한다.

자주조희풀에서 종이의 재료를 얻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나는 어쩌다 이 시집을 만드신 분들과 인연이 닿아 그 아름다운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몇 해 지나서 시인은 솔나리로 태어나고 싶다는 절명시를 남기고 떠나셨다.

시인은 가고 없으나 그의 자주조희풀과 수많은 꽃들이 남은 사람의 가슴마다 피고 진다.

 

 

 

 

 

병조희풀 Clematis heracleifolia DC.

 

제주도와 남해 일대를 제외한 전국의 산지에서 허리 높이로 자란다.

7~8월에 길이 2.5cm 정도의 호리병모양 꽃 여러개가 모여 핀다.

수꽃, 암꽃, 양성화가 한 그루에 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