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래나무 Betula ermanii Cham.
고산지대의 정상부에서 10~15m 정도 자라는 자작나무과의 갈잎큰키나무.
5~6월에 잎과 동시에 수꽃차례는 길이 5~7cm로 여러 가닥이 아래로 늘어지며
암꽃차례는 길이 2cm 정도로 가지 끝에서 약간 안쪽에서 위를 향해 핀다.
사스래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높은 산에서만 볼 수 있는 나무다.
그리고 이 나무가 사는 곳보다 높은 곳에서는 다른 큰키나무를 만날 수 없다.
교목이 살 수 있는 가장 높은 땅, 즉 수목한계선은 해발 1800m 정도인데
사스래나무는 대개 1500~1800m 높이에서 자라며 한계선 부근에서는 이 나무밖에 없다.
서쪽에서 백두를 오르는 완만한 능선의 사스래나무 군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곳의 푸른 초원은 오직 사스래나무들만을 위한 낙원이다.
백두산 서파를 셔틀버스로 오르내릴 때마다 그 멋진 길을 잠시나마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그곳 규칙상 차를 세울 수 없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어느 해 관광객들이 밀려들지 않는 새벽에 서백두에서
일출을 보고 내려오면서 가이드에게 부탁해서 차를 세우고 해묵은 갈망을 이룰 수 있었다.
한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지는 백두 고원의 푸른 하늘아래 사스래나무들은 늠연했다.
나무들은 끝없는 만주벌판을 굽어보며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는 햇볕과 바람을 제왕처럼 누리고 있었다.
그 땅은 분명 사스래나무들만의 영토였다.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온몸에 눈과 얼음을 두르고 칼바람을 맞으며 백 번이 넘는
겨울을 견디어내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 그들의 영토는 대가 없이 얻은 건 아니었다.
얼마나 뿌리가 강인하기에 그 거목들이 백두 고원의 거센 바람을 견딜 수 있었을까.
이 나무들의 수액과 수피는 어떻게 몇 달이나 영하 40도의 혹독한 추위를 견딜까.
혹한의 칼바람을 맞기 보다는 차라리 눈과 얼음옷이라도 입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도 싶다.
근거 없는 추측이지만 이 나무의 희고 반짝이는 수피에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듯하다.
추운 날씨에는 두꺼운 옷 한 벌보다 얇은 옷 여러 겹 입는 게 훨씬 따뜻하다고 배웠다.
겹겹이 줄기를 싸고 있는 수피는 얇지만 단단하고 야무지게 보인다.
이 나무는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조금씩 조금씩 제물을 바치듯 껍질을 벗는다.
사스래나무가 얇은 껍질을 사실사실 벗겨내는 모습에서
‘사스래’라는 이름이 나왔을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추측을 해 보았다.
백두산 말고도 한라산, 설악산, 태백산, 지리산의 정상부에서는 이 나무를 만날 수 있다.
그 명산들의 꼭대기에 가서는 그곳의 큰 어르신인 사스래나무에게 경의를 표하고 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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