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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북방 높은 산의 나무

일망무제의 고원에 핀 노랑만병초

노랑만병초    Rhododendron aureum Georgi

 

설악산 이북의 고산지대에서 30~100cm 높이로 자라는 진달래과의 늘푸른떨기나무.

잎이 약간 뒤로 말리며 5~6월에 가지 끝에서 나온 꽃차례에 상아색 꽃이 핀다.

 

 

 

 

중국 땅에서 백두산을 오르는 길은 서, , 북의 세 방향에서 나 있다.

이 길들은 각 방위에 언덕이나 능선을 뜻하는 파()를 붙여 서파, 남파, 북파라고 부르며,

동쪽에서 오르는 길은 중국식으로 말하면 동파겠지만 지금은 갈 수 없는 우리 땅이다.

남파는 압록강 상류를 끼고 오르는 백두산의 남쪽 비탈인데 접근성이 좋지 않은 까닭에

찾는 사람이 드물어서 북파나 서파보다 오롯이 백두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남백두 정상부의 눈이 거의 녹을 무렵 그곳에서 일출을 맞을 기회가 있었다.

남파에서 해 뜨는 쪽을 바라보면 그곳은 모두 우리나라 땅 개마고원의 북단이다.

오전 다섯 시를 몇 분 앞두고 아득한 개마고원의 저편에서 해가 떴다.

햇살이 어둠을 걷을 때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꽃이 노랑만병초의 무리였다.

고산화원을 수놓은 꽃들 중에서 가장 밝은 색에다 크기도 커서 먼저 보인 것이다.

마치 초원에서 풀을 뜯는 무수한 양떼의 모습처럼 보였다.

 

(남파에서 바라본 개마고원과 노랑만병초 군락)

날이 더 밝아오면서 담자리참꽃이나 가솔송과 같은 자주빛 꽃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개감채나 좀설앵초처럼 작은 꽃들도 차례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노랑만병초는 백두산 고원 어느 곳에서나 무리지어 피고 천지 물가에서도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대평원처럼 평탄한 남파 중턱의 대군락이 그 중 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망무제(一望無際)! 말로만 듣던 일망무제가 생애 처음으로 느껴지는 곳이었다.

사방에 눈길 가는 곳까지 사람이 세운 것이라고는 단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지나온 날이나 앞으로 살아갈 날에 또 이런 광야에 설 기회가 있을까 싶었다.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이육사의 시 광야의 첫머리가 그대로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천지 주변의 노랑만병초)

엷은 안개가 맑고 따사로운 햇살에 자리를 내주는 광야, 그 위를 달리는 바람소리...

오감으로 와 닿는 그 모든 것들이 태초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 무애함은 인간세상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났다는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분명 몇 걸음만 내디디면 한만국경일 텐데 그 어떤 경계의 표시도 보이지 않았다.

긴장이 팽팽한 국경에서 완전한 자유를 느끼다니 무슨 아이러니인지 모를 일이었다.

 

노랑만병초의 무리는 보이지 않는 국경을 지우며 화사하게 꽃피고 있었다.

만병초라는 이름은 모든 병을 고칠 만큼 몸에 좋다는 이름이지만

그 약성이 상당히 독해서 함부로 복용하면 도리어 만 가지 병을 얻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일망무제의 백두산에 올라 노랑만병초 무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병이 낫지 않겠는가.

 

 

2020. 7. 14.

 

 

 

 

 

만병초           Rhododendron brachycarpum D.Don ex G.Don

 

지리산 이북의 높은 산지 능선이나 울릉도에서 드물게 자란다. 높이 1~4m 정도.

잎은 가지 끝에서 5~8개씩 모여 달리며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약간 뒤로 말린다.

6~7월에 가지 끝에 나온 꽃차례에 흰색 또는 연분홍색의 꽃 5~15개가 모여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