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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북방 높은 산의 나무

신화속의 안드로메다 장지석남

장지석남     Andromeda polifolia f. acerosa C.Hartm.

 

북반구의 한대지역과 함경도의 산지 습지에 분포하는 진달래과의 늘푸른 떨기나무.

한 뼘 남짓한 높이로 자라며 잎은 길이 1.5~4cm로 좁은 피침형이고 광택이 난다.

5~6월에 가지 끝에서 항아리 모양의 분홍색 꽃이 2~6개씩 모여 달린다.

 

 

 

 

안드로메다는 바다 괴물 케토에 바쳐진 제물로 바닷가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이때 하늘을 날고 있던 제우스의 아들 페르세우스가 이 위기의 순간을 보고 괴물을 퇴치했다.

안드로메다가 제물로 바쳐진 건 그녀의 어머니인 카시오페이아의 교만 때문이었다.

에티오피아의 왕후 카시오페이아는 자신의 미모를 바다의 요정 네레이데스들과 비교했다.

네레이데스들은 기분이 몹시 상해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인간들을 벌주도록 부탁했고,

포세이돈은 에티오피아에 홍수와 전염병과 괴물 여신 케토를 보내 나라를 파괴토록 했다.

왕이 나라를 지킬 방도를 암몬신에게 묻자 안드로메다 공주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했다.

 

(사슬로 묶인 안드로메다, 바다 괴물 케토, 하늘의 페르세우스)

장지석남이 자라는 로리커습지에서는 이런 신화의 한 장면이 재현되고 있었다.

속명이 안드로메다(Andromeda)인 아름다운 꽃 장지석남이 여주인공이다.

습지에 가득 피어 바람에 휘날리는 황새풀은 하늘을 나는 페르세우스를 닮았고,

바다에서 입을 벌리고 다가오는 괴물 케토의 역할은 긴잎끈끈이주걱이 맡고 있다.

넌출월귤은 복수를 바라는 네레이데스들처럼 고개를 쑥 빼고 제물의 희생을 기다리고,

주변 숲에 숨어서 마음 졸이며 지켜보고 있는 나도제비란은 카시오페이아를 닮았다.

 

(로리커 습지의 식물들. 왼쪽부터 황새풀, 긴잎끈끈이주걱, 넌출월귤)

로리커(老里克)습지는 백두산이 멀리 보이는 해발 1470m의 고원에 있는 9만 평의 자연습지다.

일본이 세운 허수아비국가였던 만주국 사람 로리커가 연중 절반 이상 얼어있는 이 습지를 발견하여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한 임시 군용비행장으로 사용한데서 비롯한 이름이다.

 

울창한 종비나무와 가문비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천연의 습지식물원이다.

장지석남을 비롯해서 넌출월귤, 긴잎끈끈이주걱, 황새풀, 장지채, 물지채, 개통발, 조름나물,

나도제비란, 제비붓꽃 등 우리나라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희귀한 식물들이 번성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장지석남은 백두산 주변의 다른 습지에서 볼 수 없는 귀하신 몸이다.

 

장지석남은 사할석남, 화태석남, 대택석남, 각시석남, 애기석남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 이름을 모두 엮어보면 함경북도 장지, 사할린(화태) 등지의 대규모 습지에서 자라는

작고 귀여운 늘푸른떨기나무라는 의미가 되어 이 식물의 특징을 잘 설명할 수 있다.

공통분모로 들어가는 석남(石南)은 중국과 일본에서 상록활엽관목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각시석남은 일본명 히메샤쿠나게(ヒメシャクナゲ)를 우리말로 옮긴 이름이다.

정태현 선생과 함께 나카이의 식물탐사에 동반했던 박만규 선생은 이런 이름이 못마땅했던지

선애기진달래’(우리나라식물명감,1949)로 명명했으나 국명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무슨 석남이라는 이름도 영 마뜩찮고 선애기진달래도 식물의 특징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속명 안드로메다를 그대로 쓰는 게 이 작고 예쁜 식물에 걸맞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