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똥나무 Ligustrum obtusifolium Siebold & Zucc.
마을 주변이나 낮은 산에 자라는 갈잎떨기나무로 높이는 2~3m 정도다.
5월에 길이 7mm 정도의 꽃이 피고 가을에 쥐똥을 닮은 열매가 익는다.
쥐똥나무는 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난 나무임에 틀림이 없다.
걸음마를 익혀서 마당 밖으로 처음 나갔을 때 쥐똥나무 울타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쥐똥울타리가 밭과 길을 구분해놓은 작은 동네가 세상의 전부였었다.
예닐곱 살 무렵 소를 몰면서 왜 이 나무가 울타리가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쥐똥나무들은 가지가 촘촘하게 얽혀서 소나 노루 같은 큰 짐승은 물론이고
염소와 개, 닭들 까지도 함부로 밭에 들어가는 걸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봄에 나지막한 울타리에 빨래를 널면 자잘한 꽃향기가 묻어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사내아이들은 째끼칼을 끈으로 매달고 다녔는데,
째끼칼은 잭 나이프 jack-knife를 우리식으로 부른 이름이었지 싶다.
째끼칼은 연필을 깎거나 종이를 자르라고 사준 학용품이었으나
이제는 칼을 다룰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는 자격증이기도 했다.
주변이 온통 자연이었던 산골에서 이 칼의 용도는 무궁무진했다.
학교 갔다 올 때 출출하면 소나무 가지의 속껍질을 벗겨먹는데도 썼고,
버들피리, 연, 팽이, 제기 등의 놀이도구를 만들 때도 요긴했다.
쥐똥나무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서 새총이나
놀이에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를 만들기에 딱 좋은 나무였다.
80년대에 들어서 소 요령소리가 경운기소리로 바뀌면서 마을길을 넓히느라
골목길의 중앙선이었던 소똥과 소의 가드레일이었던 쥐똥울타리가 사라졌다.
지금은 동네 뒤안길에 한 두 그루 남은 쥐똥나무를 보면 옛친구 만난 듯 반갑다.
산에서도 가끔 만나는 쥐똥나무는 마을주변에서 자라는 나무와 많이 다르다.
큰키나무들 사이에서 한 줌 햇볕이라도 더 받으려고 이리 저리 줄기를 뻗다보니
마을에서 울타리가 되어 촘촘히 늘어섰던 쥐똥나무들보다 야성미가 있다.
울타리로만 보던 눈에는 생소한 그 모습이 쥐똥나무 본연의 모습이리라.
쥐똥나무는 열매가 까맣게 익으면 쥐똥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
집안이나 집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쥐똥도 쥐똥나무와 함께 사라져갔다.
초가집과 동네 우물들과 개울을 건너던 징검다리와 물레방아도 사라졌다.
사라진 것들을 대신하여 들어선 문명은 세월이 흘러도 별로 정이 들지 않는다.
2020.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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