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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자주 보는 떨기나무

추억을 부르는 이름 올괴불과 길마가지



올괴불나무  Lonicera praeflorens Batalin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산지에서 키높이 남짓 자라는 인동과의 갈잎떨기나무.

3월 초순~중순, 잎이 나기 전에 잎겨드랑이에서 연분홍색의 꽃이 2개씩 달린다.

열매는 지름 7mm 정도의 구형으로 거의 붙어있고 5~6월에 붉게 익는다.

 



 

오래 전에 주변에서 사라진 것들을 상기시켜주는 나무가 있다.

이른 봄에 귀여운 꽃을 피우는 올괴불나무나 길마가지나무 같은 것들이다.

식물의 이름들 중에는 그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은데,

이들처럼 뜻이 분명한 이름은 친근감이 더하고 쉽게 잊히지도 않는다.


올괴불나무의 꽃은 야실야실한 연분홍 꽃잎에다 긴 수술 끝에 빨간 꽃밥이 달려있다.

어떤 친구는 연분홍 원피스에 빨간 구두를 신고 봄나들이 나온 요정과 같다고 했다.

올괴불의 에는 이른 봄이 깃들어있고, ‘괴불은 고양이 불알의 옛말이다.

작고 동글동글한 열매 두 개가 거의 붙어있는 것처럼 보여서

숫고양이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는 의미로 붙은 이름이다.


괴불의 다른 한 가지 의미는 솜 같은 것을 작은 주머니에 넣어 도톰하게 만든 수예품으로,

노리개에 엮어서 몸에 지니기도 했고 근대에는 사진틀을 받치는 장식으로도 썼다.

대개 삼각형으로 만들었는데 삼재三災를 쫓는 부적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길마가지나무)


올괴불나무와 같은 인 길마가지나무의 꽃은 노란색 꽃밥이 달린다.

그 열매는 아랫부분의 절반 정도가 서로 붙어있어서 반바지 모양과 비슷한데,

백성 대다수가 농사를 짓던 옛날에는 이 열매에서 길마를 먼저 떠올린 듯하다.

길마는 소나 말의 등에 얹어 수레를 끌거나 짐을 싣는 안장인데

동물의 등에 편안하게 걸쳐 지도록 자 모양으로 되어있다.


올괴불나무나 길마가지나무의 이름에는 봄이 연상되는 감칠맛이 있다.

봄과 괴불은 봄은 고양이로다라는 시를 징검다리 삼아 만나지고,

길마는 소와 농부가 바빠지는 경작의 계절 봄에 썩 어울리는 소품이다.

괴불이나 길마는 요즈음 거의 쓰이지 않는 죽은 언어(死語).

이런 이름씨들은 지금 노년층에 접어드는 사람들에게도 가물가물한 말이다.

괴불은 산업화시대가 시작될 때 골동품상들이 수집해가서 작은 박물관들에 남아있고,

길마는 더러 헐리지 않은 시골집 헛간에서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고향 이웃의 폐가에서 찾아낸 길마)


나는 두메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까닭에 이런 것들을 본 기억이 남아있다.

길마가지나무의 꽃이 피는 어느 봄날 오십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폐가가 된 이웃집 외양간 시렁에서 기어이 길마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컴컴한 시렁 위에서 세월의 먼지가 쌓인 길마는 아득한 추억을 생생하게 소환해 주었다.

길마의 가랑이 사이로 외양간 가마솥 앞에서 도란거리며 소죽을 끓이던 옛친구며

소에 길마를 지우고 들로 나가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2020. 4. 20.

 






길마가지나무 Lonicera harae Makino

 

전국의 산지에 분포하나 남부지방으로 갈수록 흔하고 키높이 정도로 자란다.

2~4월에 잎이 나올 때 잎겨드랑이에서 2개의 꽃이 흰색이나 연분홍색으로 핀다.

길쭉한 구형의 열매는 반 정도가 붙어있어 반바지처럼 보이고 5~6월에 익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