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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자주 보는 떨기나무

김유정의 노란 동백꽃 생강나무



생강나무 Lindera obtusiloba Blume

 

전국의 산지에 널리 분포하는 녹나무과의 떨기나무로 3~6m 정도로 자란다.

암수딴그루로 3~4월에 잎이 나기 전에 피는 꽃에서 생강 비슷한 냄새가 난다.

열매는 지름 7mm 정도의 구형으로 여기서 짜낸 기름을 동백유라고도 한다.

 

 



 

반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시골에서는 산에 가서 땔감을 구했다.

내 유년 시절의 어느 봄날 아버지의 나뭇짐 위에 노란 꽃이 핀 걸 보았다.

호기심어린 걸음으로 다가갔을 때 상큼한 향기를 쏘아준 그 꽃은 생강나무의 꽃이었다.

계절의 변화를 배워가는 산골 아이가 처음 경험한 봄은 그렇게 노랗고 강렬한 향기로 왔었다.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타지에서도 생강나무를 만나면 불현 듯 고향의 어느 봄날,

아버지의 나뭇짐에 삐져나온 생강나무 꽃이 떠오르곤 했다.


나이가 들면서 생강나무와 아주 비슷한 산수유가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산수유는 멀리서 보면 생강나무와 비슷하지만 꽃의 생김새가 다르고 생강 냄새도 나지 않는다.

이런 차이들은 글로는 조목조목 짚어줄 수 있어도 직접 보아야만 제대로 각인이 된다. 

대체로 산수유는 심어서 기르는 나무여서 동네 주변에서 볼 수 있고

생강나무는 산속에서 고만고만한 다른 나무들과 어울려 자란다


(생강나무 꽃(왼쪽)과 산수유 꽃(오른쪽) 


난대식물인 동백나무가 없는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라고 불렀다.

생강나무 열매에서 동백 열매의 것과 비슷한 기름을 얻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강원도가 고향인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도 생강나무 꽃을 지칭하는데, 

이 소설에서 가장 극적이고 상징적인 대목에서 생강나무가 등장한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망아지만한 계집애 점순이네 집 소작인의 아들이다.

점순이는 종종 힘센 자기네 수탉과 우리집 작은 수탉과 싸움을 붙여 를 약 올렸는데,

어느 날 점순이가 치마폭에 감추어 온 따끈한 감자를 거절한 뒤로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산에서 나무를 지고 내려오다가 보니

점순이가 또 닭싸움을 붙여서 자기네 닭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홧김에 점순네 수탉을 패대기를 쳐서 죽인 는 겁이 나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점순이는 일러바치지 않겠다고 하며, ‘를 잡고 동백꽃 속으로 쓰러져 버린다.

그 대목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있다.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이 소설에서 단 한 번, 그러나 강렬한 이미지로 등장하는 노란 동백꽃이 생강나무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는 단지 생강나무에서 나는 것만은 아니었을 테고

땅이 꺼지는 듯 온 정신이 고만 아찔했던 까닭도 그 냄새 탓만은 아니었으리라. 


2020.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