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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낙엽지는 떨기나무

닥굿의 추억 삼지닥나무







삼지닥나무    

 Edgeworthia chrysantha Lindl.

 

팥꽃나무과의 갈잎떨기나무로 1~2m 높이로 자라며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3월 하순에 잎이 나기 전에 가지 끝에

30~50개의 작은 꽃이 모여 핀다.

내한성이 약하여 남해안 지역에서 관상용으로 식재하며

야화되기도 한다.

    








 

삼지三枝닥나무는 가지를 세 갈래로 뻗는 닥나무라는 뜻이다.

이름대로 반복적으로 세 가닥씩 가지를 쳐가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옛날에 중국에서 들여와 질 좋은 한지를 만드는 섬유를 얻기 위해 재배했었으나

근래에 더 이상 기르지 않게 되자 야산에서 여느 나무처럼 자라고 있다.

추위에 약해서 기후가 아주 온난한 지역에만 자생하고,

꽃이 아름다워서 정원수나 조경수로 심기도 한다.


삼지닥나무에서 종이를 만드는 섬유를 얻기는 하지만,

전통 한지의 원료가 되는 닥나무와는 집안이 다르다.

삼지닥나무는 팥꽃나무과에 속하고 닥나무는 뽕나무과로 분류된다.

삼지닥나무의 꽃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은 팥꽃나무 가문의 내림이다


 

어느 해 이른 봄에 남해의 고금도를 여행하다가

산자락을 노랗게 물들인 꽃나무 무리를 만났던 것이 삼지닥나무와의 첫 만남이었다.

대부분의 나무가 새순을 내기 전이어서 온통 갈색인 산비탈이 삼지닥나무의 개화로 화색이 돌고 있었다.

닥나무와 같은 집안은 아니지만 그래도 닥나무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아득한 옛 추억이 떠올랐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두메산골에서는 종이가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그때는 닥종이, 요즘 말로 한지를 많이 썼는데 문종이라고도 했다.

해마다 가을이면 낡은 문풍지나 창호지를 새로 바르는 것이 주된 용도였기 때문이다.

동네 주변에서 자라는 닥나무의 속껍질을 벗겨서 말려둔 것을

가을에 종이 장수가 수집해가면서 그 분량에 따라 한지로 값을 쳐주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닥나무의 속껍질을 얻기 위해서 닥굿을 했다.

이 굿은 흔히 무당이 푸닥거리를 하는 굿이 아니라, 큰 구덩이를 판다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동네에서 베어낸 닥나무를 모두 묻을 수 있는 큰 구덩이를 파고,

그 옆 구덩이에서 하루 종일 불을 때서 무덤만한 돌무더기를 벌겋게 달군 다음,

저녁 무렵에 물 붓는 구멍 하나만 남기고 돌더미를 흙으로 덮었다.

그 물구멍에 수십 명의 장정들이 물지게로 물을 퍼다 붓고 구멍을 막아버리면

수증기는 구덩이 바닥의 통로를 통해 닥나무를 묻은 옆 구덩이로 밀려나게 된다. 

그렇게 닥나무나 삼(大麻)을 쪄내는 집단작업을 닥굿이나 삼굿이라고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껍질을 쉽게 벗겨 섬유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때 그 시절의 산골이나 농촌에서는 기계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원시적인 집단 작업이 많았고, 아이들에게는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나 역시 어서 자라서 저런 멋진 작업의 주역이 될 날을 꿈꾸었다.

그 소박한 꿈을 꾸던 시절도 잠깐, 그 후 이 나라에 밀어닥친 근대화와 산업화의 홍수 속에서

작은 시골 아이의 꿈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휩쓸리고 말았다


2019.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