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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낙엽지는 떨기나무

이제 다시는 그런 일 없었으면



 



















 

통조화        통조화과

Stachyurus praecox lssai

 

2017년에 완도군의 무인도에서 100여 그루가 자생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암수딴그루로 3월 중하순에 종모양의 꽃들이 총상꽃차례로 늘어져 달린다.

꽃차례의 길이는 반 뼘 정도이고 꽃잎과 꽃받침은 각각 4장이다.

  



  

이름부터 생소한 통조화라는 나무가 남해의 한 무인도로 나를 유혹했다.

그 섬에 닿는 여정의 끝은 일엽편주 작은 낚싯배였다. 

접안시설이 없는 곳이라서 파도가 넘실대는 갯바위에 간신히 배를 대고

자칫 균형을 잃거나 미끄러져 바다에 빠질 위험을 뛰어 넘어 섬에 발을 디뎠다.



그 섬에는 통조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배에서도 보인다는 말을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화기를 놓쳤는지 해걸이를 하는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두 시간이 넘도록 험한 바위를 오르내리고 밀림을 헤치며

비상식량을 준비하지 않은 후회가 들 무렵, 난생 처음 보는 꽃이 나타났다.

이미 사진을 통해 눈에 익히고 갔기 때문에 바로 통조화임을 알 수 있었다.  


가지 끝에는 막 새잎이 나오고 있었고, 꽃은 방울을 조롱조롱 엮어놓은 듯했다.

히어리보다 길게 늘어진 풍성한 꽃차례는 상아색인 듯 백록색인 듯 보였다.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데, 암꽃의 수술은 거의 퇴화되었고,

수꽃은 꽃가루를 전하면 가벼운 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져버린다고 한다.



통조화의 속명 Stachyurus 는 그리스어로 이삭을 뜻하는 Stachys

꼬리를 뜻하는 oura의 합성어로 이삭이 꼬리처럼 늘어졌다는 의미가 된다.

통조화通条花는 꽃이 길게 주렁주렁 연결되었다는 뜻의 일본 이름이다. 

학명과 같은 맥락으로 만든 이 한자어 이름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의미를 읽어낼는지 의문이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통조화가 재배식물로 분류되어 올라있다.

이제 자생식물로 자리매김해서 다시 정리되겠지만 한 가지 걱정이 앞선다.

내에 살지 않는 식물을 들여왔다면 원산지의 이름을 그대로 써도 무방하지만,

리 땅에도 자라는 것을 보고도 남의 이름을 그대로 쓰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다


  

채진목처럼 일제치하에서 일본 이름을 그대로 쓴 사례가 더러 있기는 해도,

광복 이후에 붙인 이름도 남의 나라 이름을 그대로 쓴 사례가 적지 않다.

예컨대 초령목, 문모초, 소엽풀, 나한송 등은 1945년 이후 발견되어 붙인 이름인데,

일본이나 중국의 이름을 그대로 국명으로 쓰고 있다.

나도 이런 이름이 거북한데 다음 세대에게는 또 얼마나 불편할까. 


'통조화'에는 그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땅에 버젓이 무리지어 사는 나무를 남의 나라 이름으로 불러야 하겠는가.

자생지가 한정되고, 생김새가 독특해서 붙여줄 수 있는 우리 이름이 많다.

이를 테면 완도군의 무인도에 자생하므로 완도히어리라든가,

방울을 닮은 꽃들이 조롱조롱하니 방울조롱꽃나무’도 좋지 않겠는가.

제발 이번만은 정신없이 살던 그 때 그 시절처럼

통조화라는 이름이 버젓이 국명으로 행세하지 않기를 바란다  


2019.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