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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사철푸른 떨기나무

비정한 바닷가의 다정큼나무



 















다정큼나무                장미과

Rhaphiolepis indica var. umbellata (Thunb.) Ohashi

 

남부 지방과 제주도의 바다 가까운 산지에서 키 높이 남짓 자란다.

가지가 돌려나듯이 모여달리며, 잎 모양과 크기에 변이가 심하다.

5~6월에 가지 끝에서 지름 1cm정도의 꽃이 원뿔모양꽃차례로 핀다.





 

보길도의 동쪽 끝에는 송시열 글씐바위가 있다.

그가 장희빈 아들의 세자책봉을 반대하다가 숙종의 노여움을 사서

제주도로 유배 가던 길에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머물 때,

 그의 심경을 바위에 시로 써 놓았다

  

八十三歲翁

蒼波萬里中 

 여든 셋 늙은 몸이

         푸른 바다 한 가운데 떠 있구나            

一言胡大罪

三出亦云窮

 한마디 말이 무슨 큰 죄일까

이미 세 번 쫓겨남도 힘들었거늘

北極空瞻日

南溟但信風 

 북녘 하늘 속절없이 우러르며

 남녘 바다의 순풍만 바라노라

貂裘舊恩在

感激泣孤衷 

 담비갖옷 내리신 은혜 있으니

감격에 외로운 충정 흐느끼네 

(후략)   

  

제주에 유배된 송시열은 석 달 만에 다시 국문을 한다며

한양으로 불려가던 길에 정읍에서 사약을 받았다.

그의 학문적 정치적 공과를 떠나서 권력이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에 여든 셋이면 오늘날 백 살도 훨씬 넘은 초고령의 나인데

그믐달만큼 남은 목숨까지 거두어 간 그 야멸참이 참으로 비정하다


(송시열 글씐바위 주변의 다정큼나무 군락)


송시열이 풍랑 거친 바다를 바라보며 속절없이 임금의 옛정을 그리워하던

그 바닷가에는 다정큼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정약용의 형 정약전도 흑산도에 유배되어 끝내 뭍을 밟아보지 못한 채 생을 마쳤다.

작은 목선이 바다를 건너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옛날에 바다는 절망적인 단절이었고

섬은 외롭고 비정한 곳이었으며 절해고도의 유배지는 더욱 그러했다.


바닷가 절벽에 흐드러지게 피는 다정큼나무는 그런 처지를 위로하는 이름일까.

단절과 절망으로 좌절한 이들에게 오히려 야속한 이름이었을는지도 모른다.

다정큼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5월에는 보길도며 흑산도를 한 번 돌아보려 한다.

 

2019.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