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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사철푸른 떨기나무

절묘한 한방 비쭈기나무



 

















비쭈기나무 차나무과

Cleyera japonica Thunb.

 

남해의 섬과 제주도의 낮은 산지에서 보통 큰키나무보다는 작게 자란다.

6월 중순에 잎겨드랑이에 지름 1.5cm정도의 꽃이 피며 백합향이 난다.

열매는 지름 8mm 정도의 구형으로 가을에 흑자색으로 익는다.

    


 

 

 

비쭈기나무는 겨울눈이 가늘고 길어서 송곳이 삐죽하게 나온 것처럼 보인다.

표준어로는 비죽하다또는 삐죽하다라는 형용사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짐작되는데,

우리말 맞춤법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에는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예컨대 1937년에 조선박물연구회가 펴낸 조선식물향명집에서는 비쭈기나무로 썼다가

5년 뒤인 1942년에 발간한 조선삼림식물도설에는 빗죽이나무로 등장하고,

그로부터 7년 후인 1949년의 조선식물명집에서는 비쭉이나무로 나온다.


이 세 권의 책 저자명에 모두 정태현 선생의 이름이 머리에 올라있으므로

이분이 이 나무의 이름을 어떻게 표기해야할지 매우 혼란스러웠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식물학도들에게 비쭈기나무, 빗죽이나무, 비쭉이나무, 빗쭉이나무의 4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국명인가 고르라는 시험문제를 내면 갖가지 답이 나올 것이 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나무를 남해의 따뜻한 섬들이나 제주도의 상록수림에서만 볼 수 있으나

일본에서는 홋카이도처럼 추운 지방을 제외하고는 전역에 널리 분포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 나무를 신의 나무라는 뜻인 사카끼(サカキ, )라고 신성시하며

신사참배 때 이 나무의 가지 끝에 종이 장식을 달거나 화분으로 바치고 있다.

극우파에 가까운 아베총리도 취임 후 해마다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비쭈기나무의 화분에 그의 이름을 달아 예물로 바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름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바쳐진 비쭈기나무 화분)


이러한 문화적 배경에서 우리 이름 비쭈기나무에는 감칠맛이 있다.

삐죽하다를 형용사로 쓰면 물체의 끝이 조금 길게 내밀려 있다는 뜻이 되지만,

 동사로 쓰면 비웃거나 언짢거나 울려고 할 때 소리 없이 입을 내밀다는 뜻이 된다.

이 나무가 일본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나무라는 걸 모를 리 없었던 우리 학자들이

입을 비쭈기 내밀까, 빗죽이 내밀까, 아니면 비쭉이 내밀어줄까

즐겁게 고심하지 않았을까하는 유쾌한 상상을 해본다.


  

2018.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