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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늘푸른숲의 거목들

머나먼 섬에 사는 나한송






















나한송                         나한송과

Podocarpus macrophyllus (Thunb.) Sweet

 

동남아시아에 분포하며 국내에는 전남 가거도 해안 절벽에 몇 그루가 자생한다.

높이 20m, 지름 60cm 정도로 자라며, 송백류의 나무 중에서 잎이 가장 넓다.

암수딴그루로 5~6월에 수분하고, 과상(열매 받침)이 부풀어 원통형으로 된다.

 

 

   

 

 

보길도는 작은 섬이지만 볼일이 참 바쁜 곳이다.

고산 윤선도가 어부사시사를 노래하며 유유자적했던 세연정과

우암 송시열이 제주로 귀양 가던 길에 바위에 쓴 글씨가 남아있다.

보길도 동쪽 예송리의 오래된 난대림과 그 맞은 편 동네에 있는 감탕나무 고목,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정자리의 황칠나무 등 볼만한 나무도 많다.


보길도를 여행하면서 습관처럼 들리는 곳이 정자리에 있는 심원위재深原緯齋 고택이다.

 명문가의 후손으로 노화면장을 지낸 김양제 선생 집안이 누대에 걸쳐 건축하고 중수한 이 집은

 중국, 일본의 기술자까지 불러다 지은 근대건축물로 동양 삼국 주택의 장점을 두루 살렸다고 한다.

이 집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전정, 중정, 후정으로 구성된 정원이다.

이 정원에는 150여 종의 아열대, 난대 수종이 조화롭게 가꾸어져 있어서 작은 식물원이라고 할만하다.


                      (정자리 고택에 있는 나한송)



많은 귀한 나무들 중에서도 중정에 있는 나한송羅漢松 두 그루가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심어서 기르기 때문에 별로 큰 나무를 보지 못했는데,

그 나무는 10미터가 넘어 보이는 큰 나무로 오랜 연륜이 느껴졌다.

나한송의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의 다른 말로,

생사를 이미 초월하여 배울 만한 법도가 없게 된 경지의 부처를 일컫는다.

이름으로는 귀한 나무인줄은 알겠는데 무슨 연유로 이런 거룩한 이름을 받았을까.


나한송은 바늘잎나무 중에 가장 잎이 넓어서 한눈에 알아보기가 쉽다.

이 나무의 독특한 모습은 재미있게 생긴 열매에 있다.

 나한송은 열매가 작은 오뚜기처럼 생겼는데 열매는 초록색으로 둥글고

열매를 받치는 과상果床이 부풀어 붉게 익는데다가 맛있기까지 하니 별일이다.


(나한송의 열매, 붉은색 부분이 과상이다)


그런데 심어서 기르는 줄로만 알았던 나한송이 몇 해 전에 가거도에서 발견되었다.

가거도는 우리나라의 서남쪽 끝에 있는 작은 섬이다.

자생하는 나한송은 어떤 모습일지 보고 싶어서 정보를 찾다가

어느 열정적인 식물탐사가가 그곳의 나한송을 탐사했던 자세한 기록을 발견했다.

마치 내가 다녀온 것처럼 실감나는 기록이어서 굳이 가보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일종의 스포일링spoiling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300년쯤 된 나무가 해안 절벽지대에 자란다고 해서 내심 기대가 컸었는데

탐사기의 사진을 보니 자연미나 연륜이 정자리 고택의 나한송에 미치지 못했다.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그곳의 아라한과 만나려니 하면서 거거도행을 미루었다.


2019.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