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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낙엽지는 떨기나무

갯대추나무의 실락원




 















갯대추나무

Paliurus ramosissimus (Lour.) Poir.

 

갈매나무과의 갈잎떨기나무로 제주도 해변 몇 군데에 자생하는 멸종위기종이다.

줄기와 잎은 대추나무와 비슷하고, 날카로운 가시가 있으며 키 높이 남짓 자란다.

6월 하순부터 잎겨드랑이에서 꽃이 피고, 열매는 사발 모양의 코르크질이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보다 몇 천 배나 더 오랜 옛날에 대추나무 삼형제가 살았다.

그 중 맏이는 대를 이어 산에서 조상이 물려준 자리를 지키는 묏대추가 되었고,

둘째는 세상에 내려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려고 마을에 자리 잡고 집대추가 되었다.

막내는 모험심이 강해서 신세계로의 큰 꿈을 품고 바닷가로 가서 갯대추가 되었다.



묏대추는 새들이 먹기 좋게 열매를 동글동글하게 만들었고 집대추는 사람들이

 맛있게 먹도록 열매를 달콤하고 크게 만들어서 그 씨앗을 산과 들에 널리 퍼뜨렸다.

갯대추는 바다에 떠서 긴 항해를 할 수 있도록 열매를 접시모양의 코르크로 만들었다.

오랜 항해 끝에 갯대추 씨앗 하나가 따뜻하고 아름다운 섬 제주 해변에 도착했다.


제주의 바닷가는 온통 바위투성이어서 뿌리내리기가 어렵지만 한 번 정착하면

다른 식물들과 영역을 다툴 일도 없고 파도나 태풍에도 아무 걱정이 없는 곳이었다.

제주로 온 씨앗 하나는 무척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먼 바다를 건너온 보람을 느꼈고,

수천 년 동안 많은 자손을 퍼뜨리며 제주의 현무암 바닷가에서 평화롭게 살았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들면서 갯대추들이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기계라는 어마어마한 괴물들이 들어와 바닷가에 길을 내고 호텔과 카페를 짓고

방파제와 부두를 만들면서 갯대추가 살던 보금자리를 거의 잃어버리게 되었다.

제주도보다 해안이 길고 기후가 따뜻한 일본으로 간 친척들도 같은 상황에 처했다

 

갯대추 뿐만 아니라 갯가나 사구에 살던 수많은 동식물들이 멸종되거나 떠나갔고

조물주가 인간에게 선물한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잃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자연에서 수만 년 길들여진 순박한 유전자와 마음의 평화도 잃었다.

 제주 해안에 얼마 남지 않은 갯대추나무의 무리는 잃어버린 낙원의 흔적이자

물질문명의 무분별한 확산속에 이미 많은 것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초상과도 같다.

 

2018.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