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늘푸른숲의 거목들

830살 비자나무의 지혜





















 

비자나무

Torreya nucifera (L.) Siebold & Zucc.

 

주목과의 늘푸른큰키나무로 주로 남부지방의 저지대에 자생한다.

높이 25m, 지름 2m 정도까지 자라는 거목으로 암수딴그루식물이다.

4월 하순에 수꽃이삭은 2년지의 잎겨드랑이에, 암꽃이삭은 새가지의

잎겨드랑이에 달리고, 열매는 이듬해 10월에 녹색으로 익는다.

 

    



 

비자나무는 남해안의 섬들과 제주도, 전남 내륙의 낮은 지대에서 자란다.

 나무의 속살이 아름답고 습기에 강하며 탄력이 있어서 예전에는

궁궐을 짓거나 배를 만들고 관을 짜며 고급 바둑판을 만드는데 쓰였다.

동의보감에 비자열매 일곱 개를 먹으면 뱃속에 촌충이 녹아 없어진다는 기록이 있듯이

 비자나무의 열매는 약간의 독성이 있어서 구충제나 다른 약재로도 널리 쓰였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의 친척뻘답게 비자나무 역시 거목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많은 비자나무들이 모여 사는 곳이 제주도의 비자림이다.

이 숲에는 2,800여 그루의 비자나무들이 자라고 있는데 평균 나이가 500살이라고 한다.

비자림에는 고려시대 정중부의 난 때 허수아비 임금으로 추대되었던 명종의 재위기간인

 1189년에 탄생했다는 거대한 비자나무가 지금도 노익장을 자랑하며 건강하게 살고 있다

 

830살을 먹은 비자나무를 바라보면 그 위용에 압도되고 신령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태풍과 가뭄과 벼락과 산불과 해충에도 살아남은 나무가 아닌가.

그런데 역사적 기록이나 유물을 살펴보면 비자나무는 자연재해 때문이 아니라

최고의 목재로써 집을 짓고 배를 만드는 등 사람에 의해 많이 베어졌음을 알 수 있다


 

부여 능산리의 4~6세기 고분군에서는 대부분 비자나무로 만든 관이 발굴되었고,

완도의 장보고 해상기지를 발굴해보니 울타리가 비자나무로 구축되었다고 한다.

고려 원종 때는 원나라 궁궐을 짓는데 비자나무 판재를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고려시대까지 이렇게 수백 년이나 자란 비자나무를 흥청망청 잘라 쓰다 보니

조선시대에 와서는 상당히 귀한 나무가 되어 벌목을 제한했던 기록이 발견되고,

영조 때는 제주도에서 바치는 공납 부담이 과하여 일시적으로 중지시키기도 했다

 

그런 역사 속에서 수백 년을 살아남은 거목은 장자莊子의 깊은 지혜를 보여준다.

 장자내편 인간세人間世에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음이 곧 쓸모라는 말이 나온다.

 비자림의 나무는 대부분 곧고 굵게 자랐으나 800년을 넘게 산 나무는 밑동부터 가지가 갈라져

 비스듬하고 구불구불하게 자라서 재목으로 쓸 일이 없었던 것이다.

이 나무는 지금 비자림의 터주대감이자 중심이 되어 수많은 탐방객들을 맞이하니

 한갓 목재로 어느 분의 관이나 바둑판이 되거나 어느 권세가 집의 마루바닥이 되거나

 어느 어부의 배 밑창이 된 것보다 훨씬 큰 쓸모가 있게 된 것이다.

 

2018.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