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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늘푸른숲의 거목들

벌레들의 보육원 조록나무



 

















 

조록나무

Distylium racemosum Siebold & Zucc.

 

조록나무과의 늘푸른큰키나무로 남해안의 섬과 제주도의 낮은 산지에 분포한다.

높이 20m, 지름 1m 정도로 크게 자라며, 4월 초순에 꽃이 핀다.

꽃차례 아래쪽에는 수꽃이, 끝부분에 두 가닥의 암술대가 나오는 양성화가 달린다.

    



 

조록나무는 벌레혹(충영, 蟲廮)을 조롱조롱 달고 있다는 이름의 나무다.

식물을 먹는 곤충에 반응하여 비정상적으로 생장한 부분이 벌레혹인데,

조록나무의 혹에는 진딧물 종류와 여러가지 벌레들이 기생한다.

 벌레혹을 벌레집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개념이 다르다.

'혹'은 식물이 만드는 식물의 일부고, '집'은 벌레 스스로 짓는 것이다

 

여러가지 식물들이 벌레혹을 만들고 많은 곤충들이 이용하지만,

식물이 그것을 만드는 이유와 과정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자신을 공격한 곤충이 다른 조직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어작용이라는 가설이 있고

곤충이 안전한 보금자리와 먹이를 얻기 위해 식물을 자극하여 만든다는 가설도 있다



조록나무의 벌레혹을 보면 이런 가설로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있다.

조롱조롱 달린 충영들은 이 나무의 잎과 모양과 크기가 비슷해서

 마치 나무가 어린 벌레들을 보호하려고 위장색과 의태를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 까닭에 일본에서는 조록나무를 '벌레들의 어머니', 즉 문모수(蚊母樹)라고 한다.


조록나무가 어린 벌레들에게 영양을 공급하고 안전한 보육시설을 제공하는데,

그 벌레들이 성장해서 그곳을 나오면 무언가 나무에게 보답을 하지 않을까?

여느 식물의 꽃에 비해 별난 모습을 한 조록나무 꽃에 수분을 해 주든지

이 나무의 천적인 다른 곤충의 접근을 막아주는 역할을 할는지도 모른다.




조록나무의 꽃은 총상꽃차례에 아랫부분은 꽃잎이 없는 수꽃만 달리고

끝부분에만 집게 모양의 긴 암술대 두 개가 돌출된 양성화가 달린다.

이렇게 꽃잎과 향기에 전혀 투자를 하지 않은 듯한 단순한 모양의 꽃은

이미 수분곤충을 스스로 키우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일는지도 모른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벌레혹의 발생이론이 가설에 머무르고 있는 걸보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식물과 곤충과의 모종의 거래는 밝히기 어려울 듯하다.

겨우 눈길이 닿을까 말까한 높이에 조롱조롱 달린 벌레혹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상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일이다.



2018.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