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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늘푸른숲의 거목들

구실잣밤나무의 바다에서






















  

구실잣밤나무

Castanopsis sieboldii (Makino) Hatus.

 

참나무과의 늘푸른큰키나무로 서남해안과 제주도의 낮은 산지에 자란다.

높이 15m, 지름 1m 정도로 크게 자라고 암수한그루로 5월에 꽃이 핀다.

열매가 자잘하게 열리는 종을 모밀잣밤나무Castanopsis cuspidata

분류하기도 하나 열매가 달리기 전에는 구분하기가 어렵다.

 

    


 

한라산 자락에 구실잣밤나무 꽃이 피는 오월에는 밤꽃 향기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밤꽃에 비해 약간 노르스름한 색을 띠지만 그 묘하게 비릿한 향기는 비슷하다.

이 꽃이 피면  드넓은 남도 난대림의 지배자가 구실잣밤나무임을 비로소 알게 된다.

주로 하천계곡주변을 중심으로 자라는 이 나무의 숲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신례천 일대의 구실잣밤나무 군락)


구실잣밤나무의 열매는 도토리보다 약간 작고 구슬과 잣과 밤을 조금씩 닮았다.

지방에 따라 제밤, 잣밤, 딱밤 등으로 부르는 건 열매가 작다는 느낌이 드는 별명이다.

하나를 까먹어 보았더니 단맛이 빠진 밤 맛처럼 심심하면서도 약간 고소했다.


어느 가을날 구실잣밤나무 숲에서 떨어진 잣밤을 줍고 있는 노부부에게

어디에 쓰냐고 물었더니 손주들 간식도 하고 묵이나 국수도 만든다고 하면서

흉년에는 이 잣밤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며 옛 일을 회상했다.

 이 자잘한 열매로 작은 배낭 하나 채우는 일도 한나절은 족히 걸릴 듯한데

어떻게 일일이 까서 가루를 만드냐고 물었더니 가을볕에 며칠 말리면

 껍질과 속이 분리되어서 적당히 으깨면 알맹이가 튀어나온다고 했다


  

구실잣밤나무는 사람뿐만 아니라 숲의 동물들에게도 풍부한 먹이를 제공하고,

인간의 삶에는 훌륭한 목재를 주고 바람을 막아주는 아낌없이 베푸는 나무다.

한라산 남쪽 자락에 펼쳐진 구실잣밤나무의 바다를 보면 새삼 다윈의 말이 실감난다.

 ‘언제든 서로 돕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 개체가 많은 종이

거의 모든 종을 누르고 승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것이 자연선택이다.'

 한마디로 많이 베푸는 종이 번성한다로 요약되는 진화론의 결론과 같은 명구다.


다윈의 생각은 인간사에서도 크게 예외가 없어 보인다.

 많은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어온 사람이 가장 성공한 삶을 산 것이다.

존경받는 부자들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대체로 물질적인 것보다는

인간애 대한 사랑과 헌신 같은 정신적 가치를 베푼 이들이 그러했다.

 

2018.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