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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늘푸른숲의 거목들

첫사랑 후박나무의 추억



 















후박나무

Machilus thunbergii Siebold & Zucc.

 

 

녹나무과의 늘푸른큰키나무로 서남해의 섬과 울릉도, 제주도에 분포한다.

높이 20m, 지름 1m 정도로 크게 자라며 봄에 주황색의 새잎을 낸다.

4월 하순부터 새잎이 난 가지 밑에 지름 8mm정도의 꽃이 달리고,

열매는 살짝 눌린 구형으로 흑비둘기가 즐겨 먹는다.

 

    


 

전방에 근무할 때 관사 정원에 훤칠하고 멋진 나무가 서너 그루 있었다.

봄이면 목련꽃을 닮은 꽃들이 화사하게 피고 손바닥보다 넓은 잎이 풍성했다.

여름에는 그늘이 좋아서 해먹을 묶어 기분 좋게 오수를 즐길 수도 있었고,

저녁에는 나무 아래에 있는 작은 정자로 벗들을 초청해서 술 한 잔의 낭만을 즐겼다.


(제주도의 후박나무)

나무의 이름을 모르고 지내던 터라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후박나무라고 했다.

 ‘후박厚朴이라면 두텁고 순박하다는 뜻이니 참 좋은 이름의 나무로 여겨졌다.

나무 이름 때문이었는지 그 나무 아래서 나누는 대화까지 후박했다.

그런데 2002년에 태풍 루사가 중부내륙을 휩쓸면서 그 나무의 밑동이 부러지자

그 아래서 나누었던 후박한 우정은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십여 년쯤 뒤에 식물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 나무가 후박나무가 아니고,

조경수나 정원수로 흔히 심는 일본목련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일본목련의 나무껍질을 후박이라는 한약재로 쓰기 때문에

그 후박나무라는 이름도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한 식물이 지역이나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다른 식물이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후박나무의 새순)

진짜 후박나무는 제주도로 이주해서 처음 만났다.

남도에서는 산이나 들에도 흔하지만 거리나 정원에도 많이 심어 기르고 있었다.

후박나무는 비슷비슷한 나무들이 울창한 난대림의 숲에서 같은 녹나무과의

까마귀쪽나무, 참식나무, 생달나무 등과 뒤섞여 자라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후박나무는 봄에 주홍색이나 노란색의 새잎을 내어 연두색으로 변해갈 때

비로소 그 존재감이 드러나며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후박나무를 볼 때마다 처음 후박나무로 알았던 일본목련이 떠올랐다.

내게는 '첫사랑 후박나무'와 '진짜 후박나무'의 두 후박나무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첫사랑 후박나무'가 국내에는 자생하지 않는, 일본에서 도입된 '일본목련'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첫사랑의 감정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정확한 이름을 모르고 만난 그 나무는 꽃과 잎과 자태가 후박을 느끼기에 충분했는데,

진짜 후박나무는 그에 비하면 잎이 왜소해 보이고 정이 가질 않았다.

만약 진짜 후박나무를 먼저 만났었더라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첫정이 무섭다더니 20년이 흐른 지금도 태풍에 쓰러진 첫사랑 후박나무를 잊지 못한다.

 

2018.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