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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사철푸른 떨기나무

스트레스에 예민한 산유자나무



 














(꽃받침이 없는 산유자나무의 암꽃)



산유자나무

Xylosma congesta (Lour.) Merr.

 

제주도와 전남의 낮은 산지에 자라는 산유자나무과의 관목 또는 소교목.

암수딴그루로 8월 하순~9월에 꽃잎이 없는 황록색의 꽃이 핀다.

속이 차있고 재질이 단단하여 가구나 악기를 만드는데 쓰인다.



 


산유자나무는 유자나무와 같은 가시가 있고 산에서 자라는 나무라는 뜻이다.

가시 밖에는 닮은 것이 없고 유실수로 재배하는 유자나무와는 전혀 다르다.

떨기나무(灌木)라고 보기에는 너무 크고 큰키나무(喬木)로는 조금 작은 편이다.


                            (산유자나무는 낮은 곳의 가지에만 가시가 있다)


이 나무는 어린 나무나 뿌리에서 갓 나온 가지에는 길고 날카로운 가시가 있고

큰 나무가 되어서 높은 곳에서 나오는 가지에는 가시가 전혀 없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이나 동물이 닿을 수 있는 높이에서 자라는 가지에는 가시가 있고,

동물이 해코지 할 수 없는 높이에서는 가시를 내지 않는 대신 잎을 많이 단다.


이런 현상을 보면 식물도 어디엔가 두뇌 역할을 하는 기관이 있을법한 생각도 든다.

어느 가을날 산유자의 암꽃을 보러 갔다가 아주 흥미로운 현상을 관찰했다.

암수딴그루식물인 이 나무의 암그루 밑동에서 나온 어린 가지에 수꽃이 핀 것이다.

적게 잡아도 50 년은 넘어 보이는 큰 나무의 뿌리에서 나온 어린 가지였는데,

믿을 수가 없어서 땅을 파서 큰 암그루의 뿌리에서 돋아나온 것을 확인까지 했다.




                              (암그루의 뿌리에서 나온 어린 가지에 수꽃이 피었다)


처음 보는 일이라 그 자리에서 평소 알고 지내는 식물분류학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교수의 답변은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런 현상을 분화(分化)라고 한다고 했다.

분화(differentiation)는 생물의 구조와 기능 따위가 특수화되는 작용이나 과정으로,

그 결과가 때로는 상상을 초월하므로 분화의 기적이라고도 한다.


교수는 식물 분화의 주된 원인은 일종의 스트레스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지난 여름 40년 만의 기록적인 폭염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암그루가 느닷없이 수꽃을 피운 현상은 식물학자도 그 이상은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다.



(암그루 뿌리에서 나온 새 가지에 핀 수꽃)


그 암그루 부근은 경작지여서 가까운 곳에 숫그루가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오랫동안 꽃은 피웠으나 결실하지 못한 암그루의 외로움이 수꽃을 피우지 않았을까.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아무리 열심히 탐구해도 끝내 이해 수 없는 것이 자연이다.

때로는 기적으로 보이고 오묘하기도 한 자연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2018.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