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가시나무
Ilex cornuta Lindl. & Paxton
변산반도 이남의 저지대에 자라는 감탕나무과의 늘푸른떨기나무.
잎은 방패모양의 가죽질이고 가장자리가 가시로 발달했다.
암수딴그루로 4~5월에 지름 5mm 정도의 녹백색꽃이 핀다.
호랑가시나무는 잎 가장자리에 호랑이만큼 무서운 가시가 있다는 이름이다.
호랑이가 등이 가려우면 이 가시로 긁는다는 풀이도 있고, 범의발나무라고도 한다.
고양이발톱이라는 뜻의 묘아자描兒刺라는 이름까지도 모두 잎의 가시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호랑가시나무를 처음 본 건 어릴 적에 크리스마스카드에 등장한 그림이었다.
그때는 이름도 몰랐고 그저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서양의 식물로만 여겼었다.
호랑가시나무는 영어로 성스럽다는 의미로 holly 또는 holly tree라고 부른다.
서양사람들이 이 나무를 성스러운 나무로 부르게 된 것은 잎의 날카로운 가시와
겨울에 빨갛게 익는 열매에서 거룩한 분의 고통과 희생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잎의 가시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쓴 가시면류관을, 붉은 열매는 그분의 피를 상징한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로빈(티티새)이라는 작은 새가 고통을 덜어주려고
부리로 가시를 뽑아내려다 그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런 맥락에서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기부를 하고 그 증표로 받는 사랑의 열매도
호랑가시나무의 붉은 열매에서 모티브가 나왔다는 설이 있으나 사실 무근한 이야기다.
사랑의 열매를 고안하고 모금을 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기독교와 상관이 없고,
그 홈페이지에서도 백당나무의 열매가 사랑의 열매와 가장 닮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나무에는 성스러운 상징성 외에도 악귀를 쫓는다는 민간 신앙도 있었다.
호남지방에는 해마다 2월에 이 가시에 정어리 눈을 꿰어 처마 밑에 달아놓으면
집안에 들어오려던 귀신의 눈이 찔려 도망간다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고,
유럽에서도 악령을 쫓기 위해 이 나뭇가지를 현관문에 걸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풍습에서 이 나무의 꽃말이 ‘가정의 평화와 행복’이 되었지 싶다.
(호랑가시나무의 암꽃(왼쪽)과 수꽃(오른쪽))
어쨌거나 호랑가시나무도 봄에는 나름 자잘하고 예쁜 꽃을 피우는데,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은 온통 잎의 가시와 겨울의 붉은 열매에만 쏠려있다.
호랑가시나무에서 얻은 한 가지 위로는 젊어서 아름답게 꽃 피우지 못했어도
나이 들어서 멋들어진 열매를 맺을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2018.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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