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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사철푸른 떨기나무

곶자왈의 선물 빌레나무














빌레나무 千兩金 자금우과

Maesa japonica (Thunb.) Moritzi & Zoll.

 

곶자왈의 함몰되고 습한 바위지대에서 자라는 늘푸른떨기나무.

줄기를 1m 남짓 뻗으며, 늘어진 줄기가 땅에 닿으면 다시 뿌리를 내린다.

암수딴그루로, 3월 하순~4월에 길이 5mm정도의 꽃이 잎겨드랑이에 핀다.


    


 

어느 날 곶자왈에서 빌레나무를 관찰하고 있는데, 지나던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그게 뭐꽈?”

빌레나무라고 하는데요..”

첨 듣는데? 옛날엔 그런 낭 없었어.”

80이 넘어 보이는 어르신은 무슨 자신감인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바위에 걸터앉아 청하지도 않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노인의 말로는 70여 년 전만 해도 그 곶자왈에는 숲이 없었다고 했다.

말을 타고 다니던 시절에 그곳에 말 수백 마리를 방목해서 육지에 내다 팔았는데,

자동차가 나오면서 말을 기르지 않게 되자 온갖 나무들이 자라서 밀림이 되었단다.

게다가 진드기를 없애려고 봄마다 불을 질러서 나무가 자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옛날에 그 나무가 없었다는 자신감이 이해가 되었다.


제주도 말인 '곶자왈'의 은 숲을, ‘자왈은 나무와 덩굴이 엉클어진 곳이라는 뜻이다.

곶자왈의 바닥은 화산암이어서 농사는 짓지 못하고, 소나 말을 방목하는 지형이다. 

이러한 곶자왈의 굴곡이 심한 화산지형의 암반을 제주도 말로 빌레라고 한다.



빌레나무는 그 빌레가 움푹 꺼진 곳에서 무릎 높이 남짓한 덤불을 이룬다.

줄기가 비스듬히 휘다가 제 무게에 늘어져 땅에 닿으면 그 자리에 또 뿌리를 내린다.

동남아시아에 주로 분포하는 이 나무가 2003년에 제주도 서부의 곶자왈에서 발견되었다.

옛날에 그곳에 숲이 없었다는 노인의 말로 미루어보면,

태풍에 실려 왔는지 철새가 옮겨왔는지 또 다른 경로로 왔는지는 모를 일이다.


빌레나무는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게 뜸을 들여 꽃 피우는 식물이다.

초가을에 벼이삭 같은 꽃망울이 생겨서 겨울을 넘기고 4월이 되어서야 꽃을 연다.

이 나무를 처음 만났던 겨울에 금방이라도 필 듯한 꽃망울을 보고서

이제나 저제나 열 번은 찾아간 끝에 연노랑색 꽃의 개화를 볼 수 있었다.

한 송이 빌레나무 꽃을 만나기 위하여 그 해 봄은 그렇게 더디 왔나보다.



요즘 무분별한 난개발로 자연이 훼손되고 환경이 파괴된다느니,

어느 종이 절멸위기에 있다느니 하는 우울한 뉴스가 그칠 날이 없다.

그런데 옛날에 없었던 숲이 생기고 그곳에서 못 보던 식물이 발견된 것이다.

자연이 피폐해지는 시대에 이 작은 나무 몇 그루는 큰 위로가 아닐 수 없다.

  

  

2018.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