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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풀꽃처럼 작은 나무

다프네Daphne의 운명 백서향



 














백서향 白瑞香

Daphne kiusiana Miq.

 

제주도와 남해안지역에 분포하는 팥꽃나무과의 늘푸른떨기나무.

허리높이까지 자라며, 2~3월에 지름 7mm 정도의 꽃이 핀다.

암수딴그루식물로 알려져 있으나, 암꽃과 수꽃의 구별이 어렵다.

 

    

 

흰 꽃이 피고 상서로운 향기가 난다는 뜻의 백서향白瑞香은

붉은자주색의 꽃이 피는 서향나무에 대비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 이름대로 이른 봄에 백서향의 꽃이 피면 온 숲이 황홀한 향기로 가득하고, 

안개까지 그윽한 날에는 신화속의 숲을 거니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된다



백서향의 속명 Daphne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숲의 요정이다. 

 숲에서 사냥을 즐기는 아름다운 그녀 다프네에게 반하지 않은 남자가 없었다.

그 무렵 장난감 같은 활로 무얼 쏠 수 있겠냐며 아폴론에게 조롱당한 에로스는,

아폴론의 심장에 황금화살을 쏘고 다프네의 심장에 납화살을 쏘아 복수를 했다.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아폴론은 납화살에 심장이 식어버린 다프네를 쫓아가지만,

그녀는 아버지인 강의 신 페네이오스에게 도움을 청해 월계수로 변해버린다.

백서향은 잎이 다프네의 화신인 월계수를 닮아서 Daphne라는 속명을 얻었다.


(월계수로 변해가는 다프네와 그녀를 쫓아온 아폴론)


백서향은 사철 푸른 잎에 꽃이 오래 가며 화분에 심을 수 있을 만한 크기로 자란다.

게다가 상서로운 향기까지 뿜으니 누구나 한 그루 키우고 싶은 욕심이 생길 법하다.

그러나 제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원래 백서향이 자라던 숲을 만들어 줄 수는 없다.

숲의 나무 친구들과 바람과 적절한 습도와 그늘과 토양을 만드는 일은 신의 영역이다.


제주도에서는 백서향을 화분이나 정원에 심어 기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게 길러지는 것들은 본래의 모습과 생기를 잃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기르는 사람은 백서향을 사랑한다고 심었을 것이나 그것은 그릇된 사랑이다.

본성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백서향은 어쩌면 다프네의 슬픈 운명을 닮았다.



참된 사랑은 소유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본성대로 자유롭게 존재토록 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 그 대상이 자식이나 연인일지라도

진정한 사랑의 본질은 다르지 않으리라.

 

2018. 8. 1



 

P.S

 

2013년에 한 연구팀이 제주의 백서향을 신종 제주백서향Daphne jejudoensis 으로 식물분류학회지를 통해 발표했다.

논문의 요지는 기존의 백서향과 자생환경과 잎 모양이 다르고, 꽃받침통에 털이 없다는 차이였다.

즉 거제도에 자생하는 백서향Daphne kiusiana Miq. 바닷가에서 자라며, 꽃받침통과 열편에 털이 있고,

거꿀피침형의 잎인데 비해, 제주백서향은 중산간지역에서 자라고, 꽃받침통과 열편에 털이 없고, 잎이 장타원형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