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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사철푸른 떨기나무

은둔하는 선비 붓순나무



 











붓순나무      붓순나무과

Illicium anisatum L.

 

상록성 교목으로 5m 정도 자라며, 국내에서는 111종의 나무다.

2월 하순부터 4월까지 지름 3cm정도의 꽃이 피며 열매가 맹독성이다.

제주도와 완도, 진도 등지의 낮은 산지 숲에서 드물게 볼 수 있다.





 

한라산자락에서 모양도 이름도 생소한 붓순나무를 단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붓순나무는 생각의 시점을 한 세기 이전의 문명으로 돌려놓는 이름이다.

요즈음은 손에 잡는 필기구보다는 손가락으로 두드려서 쓰는 글이 더 많지만,

옛날에는 무언가를 쓰려면 붓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라산에 자생하는 붓순나무)  

이름의 의미가 분명해서 어디가 붓순을 닮았을까하고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나무의 겨울눈은 대개가 붓순을 닮았으므로 거기서 나온 이름은 아닌 듯하고,

길쭉하고 하얀 꽃잎이 너풀거리는 듯한 꽃 역시 붓순과는 거리가 멀었다.


해마다 꽃이 필 때면 나무를 맴돌며 보물찾기하듯 붓순을 찾아보려 했다.

그러던 어느 해 4월에 더 이상 의문의 여지없는 붓순 모양을 찾아냈다.

그것은 꽃잎이 떨어진 뒤에 꽃자루에 남아있는 수술들이었다.


(꽃잎이 떨어지고 난 뒤에 붓순처럼 남은 꽃술) 


붓순나무는 연한 녹색을 띠는 하얀 꽃이 풍성하게 피고 은은한 향기가 있다.

그리고 겨울 끝자락에 꽃이 피어 두어 달 꽃을 볼 수 있어서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그렇게 가꾸어진 나무는 길들여진 듯 얌전하나 자연미가 없다.

붓순나무는 야생에서는 아주 드물기 때문에 만남 그 자체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에서 만나는 붓순나무는 초야에 은둔하고 있는 선비를 대하는 느낌이다.

요즘 세태에 돈과 권력에 줄서지 않고 존경 받는 지식인이 희귀하다보니

한라산 숲속에서 만나는 붓순나무가 제대로 된 선비 본 듯 반가웠다.

 

2018.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