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16일 백서향 꽃이 절정일 때 이 사진을 찍었다.
모델과 구도는 좋았으나 빛이 강해서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안개를 학수고대하며 하루에도 수 십 번 인터넷 일기예보를 열어보던 3일째,
3월 19일 드디어 안개가 적절히 형성되었고, 꽤 좋은 느낌의 이미지를 얻었다.
3월 19일 이 계절에 보기 드문 안개에 취해서 꼭 담고 싶었던 한 가지 이미지를 놓쳤다.
운 좋게 3월 20일 오후에도 흐려서 그곳에 다시 가서 향기나는 이미지로 담아 보았다.
그 사진들을 보았는지는 몰라도 친한 지인이 백서향을 보고 싶다고 전화가 왔다.
그곳에 가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 내가 직접 안내를 해야했다.
해가 뜨면 이미지가 산만하니 해 뜨기 전에 가자고 약속을 했다.
약속대로 3월 23일 해 뜨기 직전 6시 30분 쯤 그곳에 가니 뭔가 허전했다.
내가 흡족하게 찍었던 주인공이 보이지 않았던 때문이다.
캐간 흔적도, 자른 흔적도 보이지 않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나의 허전한 마음을 알 까닭이 없는 친구는 그저 좋아서 열심히 찍고 있는데...
나는 그곳을 맴돌며 사라진 흔적을 아주 세심하게 찾기 시작했다. 어떻게 한 점의 흔적도 없을 수 있는가...
주변이 너무 자연스럽고, 훼손된 흔적이 없어서 반 시간을 살펴도 단서를 찾지 못했다.
그곳의 지표는 돌들이 견고하게 땅에 박히고 서로 얽혀 고정되어 있었는데...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돌멩이 하나를 겨우 찾아냈다.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돌멩이를 제껴보니....
아! 내가 주인공으로 찍었던 백서향이 깨끗하게 잘려나간 밑동이 그곳에 있었다.
지름은 1cm 남짓이지만.. 백서향의 성장 수형으로 보면 최소한 수십 년은 되지 않았을까...
그 다음엔 잘라낸 나무를 어디 버렸을까 주변을 뒤졌지만 반경 20m 내에서는 찾지 못했다.
나의 사진에서는 잘려나간 나무가 주인공이었지만...
자른 사람에게는 저 뒤의 군락을 찍는 데 방해가 되는 존재였을까...
나는 조만간 좀 더 짙은 안개가 오기를 오매불망하고 있었는데...
아무튼 3월 21일부터 22일, 이틀 사이에 한 생명을 요절낸,
지극히 죄질이 나쁜, 야만적인 범행이 있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심한 자괴감이 들었던 날...
이 참담하고 슬픈 기록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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