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봄맞이
Lysimachia maritima (L.) Galasso, Banfi & Soldano
바닷가 습지에 자라는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5~20cm.
땅속줄기가 옆으로 뻗는다. 잎 뒷면에 파진 점이 흩어져 있다.
4~6월 개화. 지름이 6~7mm의 꽃이 잎겨드랑이에 1송이씩 달린다.
황해도, 함경도에 분포하며 근래에 동해안 일부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갯봄맞이는 동해안의 바닷가 두어 곳에서만 관찰되는 귀한 식물이다.
풍성한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생명력을 보면서 왜 이 식물은
다른 지역으로 번지지 않았을까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곳은 평범한 지형 같았으나 유심히 살펴보니 참 묘한 곳이었다.
갯봄맞이의 군락은 밀물 때 물이 닿을락 말락한 곳이어서 수분이 충분하고,
그 앞에 나지막한 갯바위들이 겹겹이 보초를 서서 거센 파도를 막아주며,
모래 토양 지반의 안정성을 유지해 줄 수 있는 명당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동해안 해안선이 주로 해안 절벽, 모래사장, 어촌의 방파제로 이어진다고 볼 때
이런 조건이 되는 곳은 매우 드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런 곳에서 자라는
갯봄맞이 또한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지정될 만큼 나는 곳이 드물다.
이런 귀한 식물의 첫 인상은 얼굴이 희고 동글동글하며
입술과 뺨은 붉고 이목구미가 똘망똘망한 앳된 소녀와 같았다.
분명히 첫 대면인데 이상하게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른 봄에 피는 봄맞이를 닮은 데라고는 보이지 않고,
봄이 다 지나서야 피는 꽃을 갯봄맞이라고 부르는 까닭도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도감을 찾아보니 갯봄맞이는 봄맞이속(Androsace)이 아닌
까치수염속(Lysimachia)으로 분류되는 식물이었던 것이다.
속명을 알고 나니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었던 까닭이 시원스레 풀렸다.
잠재적 기억 속에 저장된 갯까치수염 이미지의 데자뷔 현상이었던 것이다.
갯봄맞이는 갯까치수염에 비해 꽃이 좀 크고 꽃잎이 둥글다는 점 외에는
잎과 줄기는 아주 많이 닮은, 영락없는 까치수염 집안의 식물이다.
그런데 이 식물의 이름을 짓던 1969년에는 이미 갯까치수염이 있었기 때문에
같은 앵초과의 식물인 봄맞이의 이름을 슬쩍 빌려서 ‘갯봄맞이’로 지은 듯하다.
봄맞이속도 아니고, 비슷하지도 않고, 늦봄에 피는 꽃을 ‘갯봄맞이’라고 하느니
‘봄까치수염’이나 ‘봄갯까치’라고 했더라면 이 식물에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다.
기업들은 수명이 몇 년 안 되는 상품 이름 하나 짓는데도 온갖 지혜를
다 짜내고 전략회의를 하고 현상금까지도 써가면서 심혈을 기울이는데,
한 번 지으면 고치기가 어려워 반영구적으로 써야할 이 땅의 식물이름은
아마추어가 보기에도 아무렇게나 붙여진 듯해서 늘 아쉽다.
2016.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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