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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백두의 줄기에서

그날이 오면 부를 이름 조선바람꽃



  조선바람꽃

Anemone narcissiflora L. var. crinita (Juz.) Taruma

 

고산 초원에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40cm 정도.

6~7월 개화. 꽃대는 3~5개가 모여 나며, 지름 2cm 정도의 꽃이 핀다.

백두산과 개마고원, 중국 동북부, 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올라있지 않으며, 북한명은 '조선바람꽃'이고,

'새로운 한국식물도감'(이영노)'긴털바람꽃'으로 소개되었다.

 

 



 

압록강 상류를 따라 백두산을 남쪽에서 올라가본 적이 있었다.

강 줄기와 숲이 끝나고 초원이 나오는 꽤 높은 곳에 다다르면

중국과 북한의 경계선인 철조망과 군인 초소들이 사라지고

사람이 세운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드넓은 고원지대가 나온다.

6월 하순쯤 그 남백두의 고원에 잔설이 미처 사라지기 전에

수많은 꽃들이 한꺼번에 피면서 봄의 시작을 알린다.

 

그 무렵 그 고산의 툰드라에는 노랑만병초가 초원의 양떼처럼 꽃피고

담자리꽃나무의 하얀 꽃과 분홍의 담자리참꽃도 무리지어 피어났다.

그 사이사이에 나도개감채, 가솔송, 구름범의귀, 구름꽃다지, 두메자운,

좀설앵초, 조선바람꽃들이 빈자리를 찾아 색색이 어우러지고,

두메양귀비는 부지런한 아이들 몇몇이 연노랑색 꽃을 열고 있었다.

이런 꽃들에 취해 넋을 잃고 초원을 헤매다 보면 언제 북한 땅으로

넘어갈지 알 수가 없는 완만한 구릉과 계곡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높은 고원은 북한 땅을 가장 먼 곳까지 볼 수 있는 곳이다.

개마고원이 파도처럼 너울거리고 지평선은 안개처럼 희미하였다.

그 천상의 꽃밭에서 하얗게 하늘거리는 조선바람꽃의 무리를 만났다.

높은 산의 바람과 추위 때문인지 한 뼘 반 정도 되는 줄기에

긴 털이 많이 나 있었지만 꽃은 싱싱하고 화사하였다.

 

우리나라의 어떤 학자는 이 꽃을 긴털바람꽃으로 이름 붙였지만

북한의 도감에는 조선바람꽃이라는 이름으로 쓰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세대에게 조선'이란 말은 세월의 간격이 있다. 

그래도 왠지 정감 있게 들리고 아련한 향수가 떠오르는 것은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할아버지와 부모들 세대에서 자주 쓰던 말을

어릴 적에 많이 들었던 잠재적 기억 때문이지 싶다.


  

아직 이 꽃 이름은 우리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올라있지 않다.

통일의 그날이 오면 이 꽃이 조선바람꽃으로 불리어지기를 소망한다.

조선은 대한민국과 북한과 중국에 사는 동포까지 아우르기 때문이다.

남백두에 무리지어 핀 조선바람꽃도 그날을 기다리는지

동토의 왕국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2016.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