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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백두의 줄기에서

불꽃처럼 피는 꽃 분홍바늘꽃


 


분홍바늘꽃

Chamerion angustifolium (L.) Holub


양지바른 풀밭에 자라는 바늘꽃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1~1.5m.

잎은 잔톱니가 있으나 가장자리가 뒤로 말려 밋밋하게 보인다.

 6 ~ 8월 개화. 꽃은 지름 1cm 정도로 원줄기 끝에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백두산 일대에 흔하며 강원 일부지역과 지리산에 드물게 분포한다.

 

 




 

늘 우리 곁에는 죽음과 파멸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우리는 곳곳에서 그것을 목격하면서 두려움에 떨었지만 마음만은 그늘지지 않았다.

 

- 1970년 북 월드 페스티벌 수상작, 질 페이턴 월시의 소설 <분홍바늘꽃> 중에서 -

 

소설 <분홍바늘꽃>15세 소년 소녀가 겪은 전쟁과 사랑의 이야기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의 런던 대공습을 배경으로 쓴 이 작품은

전쟁 중에 싹튼 십대 주인공들의 애틋한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떤 독자는 이 작품이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의 영국판 같다고도 하였다.



책 제목인 '분홍바늘꽃'은 불 탄 자리에 가장 먼저 싹 터 꽃 피우는 식물로,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중에서 피어나는 소년 소녀의 사랑을 상징한다.

분홍바늘꽃은 영어로 ‘fireweed', 우리말로는 불꽃풀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 공군이 하늘에서 퍼붓는 불벼락이 떨어져 폐허가 된 잿더미에서

놀라운 생명력으로 다시 불꽃같은 꽃을 피우는 분홍바늘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순수한 사랑의 불꽃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 식물은 영국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캄챠카반도, 몽골, 캐나다, 백두산 등

북반구의 아한대지역에 널리 번성하는 세계적인 식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의 산지와 지리산에서 드물게 발견된다.

이런 북방계 식물이 한반도 남쪽지역에서 어쩌다 발견되는 현상은

빙하기의 얼음들이 북쪽으로 물러가면서 남긴 잔설에 비유되기도 한다.

  

  

분홍바늘꽃 외에도 복주머니란, 나도범의귀, 장백제비꽃, 제비붓꽃, 조름나물,

삼수개미자리 손바닥난초 등의 식물이 그렇게 이 땅에 남아있는 식물들이다.

많은 꽃벗들이 해마다 백두산, 몽골, 캄챠카로 꽃 탐사를 떠나는 까닭은

수 천 년 전 우리의 유전자가 살던 대륙으로의 회귀 본능인지도 모른다.



2016.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