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3/남도와 섬들에서

차걸이란이 초대한 시간 여행


 


차걸이란

Oberonia japonica (Maxim.) Makino


숲속 나무나 바위에 착생해서 자라는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길이 2~8cm.

줄기는 짧고 잎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으며, 잎은 2줄로 나고 칼집모양이다.

5월초~6월에 1~2mm 크기의 꽃이 돌려난다. 제주도에 드물게 자생한다.

 

 



 

제주도에 사는 꽃벗의 안내로 처음으로 차걸이란을 만나게 되었다.

차걸이란이 사는 곳은 500살에서 800살이나 되는 비자나무들이 숲을 이룬 곳이다.

원시림처럼 어두운 숲길을 앞장서 가던 꽃벗이 걸음을 멈추고,

저것이 바로 차걸이란이라며 까마득하게 높은 나뭇가지를 가리켰다.

     


안타깝게도 이미 성능이 떨어진  나의 눈으로는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카메라의 망원렌즈를 통해서 나뭇가지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고개를 젖히고 무거운 렌즈로 작은 꽃을 더듬어가는 자세가 너무 불편해서

잠깐씩 카메라를 내리고 쉬어야만 했다.

 

함께했던 또래의 꽃벗들도 고생은 마찬가지였다.

저마다 목이 아프네, 허리가 아프네 하며 벌을 서는 듯했다.

손닿는 곳의 차걸이란들이 탐욕스런 사람들의 제물이 되었으니,

나무 위로 높이 도망가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복수라도 하는 걸까?

    

 

차걸이란의 이름은 차에 거는 장식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차걸이를 검색해보면 차 안에 거는 장식이나 부적 같은 것들을

차걸이 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 광고를 흔히 볼 수 있다.

구구각색인 요즘의 장식품들에서 차걸이란의 이름을 얻어왔을 리는 없고,

옛날에 험한 길이 많아서 차가 덜컹거리며 달리던 시절에

조수석에 매달았던 손잡이의 모양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은 대부분 도로가 포장이 되어 손잡이 용도의 차걸이는 거의 사라졌다.

 

문득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에도 차걸이가 있지 않았을까 해서

경복궁 한 모퉁이에 있는 고궁박물관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순종황제와 황후가 타던 어차(御車) 두 대가 새차처럼 복원되어 있다.

그 차들에는 손잡이용 차걸이 대신에 황금색 커튼에 멋진 수술이 차창을 장식하고 있는데,

그 수술 장식을 우리나라 차걸이의 원조로 불러도 좋을 성싶었다.

그 차걸이야 말로 지금까지 보아왔던 어떤 차걸이보다도

차걸이란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기도 했다.

  

  

어차 주위를 돌면서 망국과 치욕의 근세로 잠시 시간 여행을 했다.

동화에나 나오는 차를 타고 다니던 이름뿐인 황제와 황후,

후작, 백작의 작위를 받고 어설피 서양 흉내를 내던 매국 귀족들의 군상이 스쳐갔다.

제주도 어두운 숲 속에서 흐르는 눈물처럼 피는 작은 꽃이

모순된 낭만의 시대로 나를 초대했나보다.



15. 1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