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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남도와 섬들에서

지루한 이름 둥근빗살괴불주머니


  

둥근빗살괴불주머니 

 Fumaria officinalis L.


양지바른 들에 자라는 양귀비과의 한해살이풀. 높이 20~40cm.

줄기는 곧게 서다가 비스듬히 눕는다. 잎은 깃모양으로 3회 갈라진다.

3~ 5월 개화. 길이 1cm정도의 꽃이 가지 끝에 10~30개 달린다.

유럽 원산의 귀화식물로 제주도와 남부지방에서 번지고 있다.

 




 

제주도 서쪽의 한적한 길을 지나는데 낯선 꽃 한 무리가 내 차를 멈추게 했다.

혹시 새로운 식물을 발견한 건 아닐까 해서 살짝 흥분되기도 했었지만,

이미 2007년에 우리나라의 귀화식물로 등록된 둥근빗살괴불주머니였다.




아홉 글자나 되는 지루한 이름을 가진 식물은 근래에 발견된 외래식물인 경우가 많다.

이런 식물에게는 같은 속의 식물 중에서 잘 알려진 근연종의 이름 앞에

그럴싸한 수식어를 붙여서 새 이름을 지어주기 때문이다.

둥근빗살괴불주머니는  '괴불주머니'라는 토박이 이름 앞에 '둥근빗살'을 붙인 것이다.

 

괴불주머니는 옛 장신구의 하나로, ‘괴불이라고도 하며 고양이 불알의 줄임말이다.

대개 삼각형의 작은 주머니에 솜을 넣고 수를 놓아 예쁘게 꾸몄는데,

옛 사람들은 이를 몸에 지니면 귀신을 쫓는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이 괴불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듯한 꽃을 피우는 식물도 괴불주머니라고 부른다.

(이재능 지음, ‘...176~77. ’기나긴 밤들의 꿈이 아로새겨진 괴불주머니참조)


(꽃이 진 후 둥근빗살 모양의 씨방이 생기는 모습)


괴불주머니앞에 붙은 둥근빗살은 일반적인 명사라기보다는,

이 식물의 이름을 붙인 분이 고심해서 만들어 낸 단어로 보인다.

짐작건대 머리 빗는 촉감이 좋도록 끝을 둥글게 만든 빗살을 일컫는 듯하다.

아무튼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가면서까지 이렇게 긴 이름을 지어낸 까닭은

이 식물의 씨방 모습이 그러한 빗살의 모양을 쏙 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둥근빗살괴불주머니는 씨앗을 멀리 퍼뜨리지는 않으나

일정한 지역에서는 아주 기세 좋게 번지는 듯하다.

먼 후일 이 식물이 제비꽃이나 민들레처럼 널리 번지게 되면

그때도 이렇게 긴 이름을 달고 다닐지는 의문이다.



'괴불주머니'는 '괴불'이라고도 하므로 '둥근빗살괴불'로 부르면 어떨까.

바람직하기는 괴불주머니보다 꽃이 작고 어여쁘니 각시괴불'이라고 하든지,

분홍 꽃이 피므로 분홍괴불이라고 부르면 이 녀석과 더 친해질 것 같다


2016.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