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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남도와 섬들에서

한라여신의 무염시태(無染始胎) 무엽란





 

무엽란 Lecanorchis japonica Blume


상록수림의 습한 그늘에 자라는 난초과의 여러해살이 부생식물.

높이 30~40cm. 줄기는 곧게 서며 잎은 비늘 형태로 퇴화되었다.

6월 초순~7월 초순 개화. 맑은 날에만 꽃잎을 활짝 연다.

제주도에 주로 분포하며 전남 남해안의 섬에서 드물게 발견된다.








 

어쩌다 햇볕이 잠깐 드는 습하고 어두운 숲에서 사는 난초들이 있다.

그 중에 전형적인 식물이 '잎이 없는 난초'라는 이름의 무엽란(無葉蘭)이다.

무엽란은 광합성을 하는 잎이 비늘 모양으로 퇴화된 대신에

숲 바닥에 두텁게 쌓여있는 다른 식물의 사체에서 유기물을 섭취한다


                       (무엽란)

 

어두운 숲에서 잎도 없이 자라는 무엽란은 눈에 잘 띄지 않으나,

그만이 갖는 격조를 보면 '모든 생명은 아름답다'는 말에 새삼 공감하게 된다.

곧은 줄기와 무엽의 간결함은 청빈한 선비나 수도자의 모습이고 

은은한 향기와 색상은 옛 여성의 이상형이었던 요조숙녀의 품격이다.

무엽란과 비슷한 제주무엽란은 대개 녹황색이나 갈색을 띠지만

드물게 신비로운 보라빛 형광을 내는 개체가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무엽란이 자라는 한라산 남쪽 계곡은 그 어느 계곡들보다도 어둡고 깊다.

이 곳에는 무엽란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희귀한 난초들과

이국적인 나무, 부생식물들과 이끼와 고사리들이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버어먼초, 애기천마, 영주풀,

비자란, 실꽃풀, 콩짜개란, 한란 등의 식물이 모두 이곳에서 살고있다.

식물 종의 다양함과 함께 이곳에서 뱀들이 정자처럼 꿈틀대는 걸 만날 때마다

이 음습한 깊은 계곡이 한라산의 자궁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곤 한다



                                           (청보라색을 내는 제주무엽란)

 

제주도에서 오랫동안 난초를 연구해온 분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한라산의 동남쪽 지역에 여러 종류의 난초들이 많이 자란다고 한다.

북태평양에서 올라오는 태풍이 높은 산의 동남쪽에 걸리면서

남쪽나라에서 품어온 난초 씨앗들을 비와 함께 뿌리는 까닭이라고 했다

 

학자들은 과학으로 그 역사를 쓰겠지만 나는 신들의 이야기로 남기고 싶다.

아득한 옛날 태풍의 신이 한라 여신에게 반하여 수많은 생명을 잉태시켰고,

그 바람이 지나간 뒤 수태한 무엽란은 한라여신의 무염시태(無染始胎)라고...


** 무염시태(無染始胎) : 원죄 없는 잉태 (카톨릭 용어)



2016. 6. 8.










  

제주무엽란 Lecanorchis kiusiana Tuyama


상록수림의 그늘에 자라는 여러해살이 부생식물. 높이 10~20cm.

줄기는 곧게 서며 담록색, 녹황색, 청보라색 등의 색상을 띤다.

6월 초순 개화. 꽃의 길이는 1cm 정도로 좀처럼 꽃을 열지 않는다.

제주도와 전남 남해안의 도서지역에 자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