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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산과 들 사이에서

산해박의 이름에서 해박되다



산해박 Cynanchum paniculatum (Bunge) Kitag.


산이나 들의 양지바른 풀밭에 자라는 박주가리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40~100cm. 줄기는 가늘고 길며 단단하고 곧게 선다.

5월 하순 ~ 9월 초순 개화. 지름 6~8mm의 꽃이 줄기 윗부분에 달린다.

해질 무렵 꽃을 열며 야간에 곤충들이 수분을 한다. 

 

 






 

산해박이라는 식물의 이름은 도무지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우리말 이름 같지는 않은데 한자로 표기된 근거를 찾지도 못했고,

산자고나 백미꽃, 용담처럼 한약재명을 차용한 이름도 아니었다.

풀지 못한 수수께끼처럼 늘 머리 한구석을 찜찜하게 하는 이름이어서 

그 속내를 모르니 산해박과는 터놓고 지낼 수 없는 사이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차에 식물생태학자인 김종원 님이 쓴 책에서(한국식물생태보감 1. 2013.)

산해박의 이름에 대해 설명한 글을 보고서야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다.

그 내용을 요약해보면, 산해박은 ‘山解縛이라는 한자명의 음독으로 추정되며,

앞에 붙은 '山'은 이 식물이 주로 산에 살기 때문에 썼을 것이고,

'解縛'은 결박한 것을 풀어준다거나 결정적으로 해결한다'라고 풀이하였다.

그리고 산해박에 관련된 동서양의 여러 이름과 기록들을 두루 살폈을 때

어떤 독을 풀어주는 약효가 확실한 식물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산해박의 유래에 대하여 이 추론보다 더 그럴듯한 답을 얻기는 어렵다는 생각에

이제 그만 그 이름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스스로 '해박'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산해박의 이름을 받아들일 무렵에 한 장의 의미있는 사진을 받았다.

지인이 어느 천주교 묘지에서 십자고상(十字苦像) 앞에 핀 산해박을 찍었는데

사진을 메일로 보내면서, 뭔가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말을 덧붙여 놓았다.


  

그 사진을 본 순간 '박해와 해박'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산해박은 볕이 잘 들고 키가 낮은 풀밭에 잘 자라므로

주기적으로 풀을 깎아주는 묘지에서 만나기 쉬운 식물이다.

사진 속의 산해박은 무덤 속에서 아직도 박해와 고통을 받는 어떤 영혼을

해 질 무렵에 밤하늘의 별 모양으로 다시 피어올려 해박하는 듯이 보였다.  


박해받는 거룩한 분의 형상과 산해박 이름은 아무런 관련이 없겠지만

나는 그 한 장의 사진으로 오랜 숙제로부터 편안하게 해박이 되었다.


2016.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