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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일기/탐사일기

2013. 8. 10. 낙양에서 만난 측천무후

 낙양시에서 얼마되지 않는 곳에 유명한 용문석굴이 있다.

이하(利河)라는 강가에 3000여개의 바위 동굴에 부처님을 조각해놓은 거대한 유적이다.

 

 

 

석굴을 가까이서 보고 강을 건너와서 나중에 본 전경이다.

 

 

 

 

이것은 입장권을 주고 첫번째 만나는 동굴 군락이다.

물론 이것도 나중에 강건너에 와서 찍은 사진이다.

 

 

 

 

3천개 동굴 중에 날도 덥고 시간도 없고 해서

대여섯개만 둘러보았다.

부처님 표정이 아기처럼 해맑다.

 

 

 

 

3천여 동굴 중에서 꽤 쳐주는 만불동이다.

동굴 좌우측 격자무늬가 다 부처님 조각이다.

저 격자무늬에 부처님 상을 10,000 개 새겼다고 해서 만불동이다.

 

 

 

 

가까이 보면 이렇고....

 

 

 

 

 

 

오른쪽 벽을 더 가까이 촬영하면 이렇다.

부처님이 결가부좌한 모습인데...

 

 

 

 

 

 왼쪽벽은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왜 그랬을까??

 

 

 

이 3000여 동굴들은 위나라 때부터 당나라 시대까지 500 여 년에 걸쳐서 조성되었다고 한다.

 

 

 

 

 

 

40도를 오르내리는 더운 날씨에도 관광객들이 북적거린다.

 

 

 

 

 

용문석굴의 하이라이트다.

용문석굴 하면 바로 이 불상을 지칭할 정도로 규모나 예술성면에서 단연 뛰어나다.

 

 

 

 

부처님 바로 옆에 두 사람은 부처님의 제자 가섭(왼쪽)과...누구? 라했는데 잊어버렸다.

그 옆에 있는 두 조각은 문수보살, 보현보살이라 카던가...

 

 

 

 

가이드가 말했다. 이 얼굴은 분명 부처님의 얼굴이 아니라고..

이 얼굴은 부처님의 몸을 빌린 당대의 절대권력자 '측천무후'의 얼굴이라고 했다.

 

측천무후는 그의 절대 권력과 자비로움을 과시하기 위하여 이 거대한 불사를 일으켰다고 했다.

그녀는 높은 곳에서 눈을 지그시 내리 깔고 세상을 지배하는 포즈를 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잠깐 소설을 써 보자면...

서기 200년~300년 사이에 낙양부근에 살던 노인이 불심이 깊어서 이 절벽에 부처님 모습을 새겼다.

그 정도 불심이 깊으면 무슨 복인들 받지 않았겠는가.

동네 사람들이 그것을 본 받아 너도 나도 부처님을 조각하기 시작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먼 곳에서도 와서 점점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불상들이 생겼다.

 

 

 

 

그로부터 당나라때까지... 400여 년에 걸쳐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부처를 조각하며 극락왕생을 빌었다.

그 중에 큰 부자는 여러 일꾼과 솜씨좋은 조각가를 사서 크고 아름다운 부처도 만들었다.

이 소식은 당나라 때 최초의 여황제가 된 측천무후에게도 들어갔고....

측천무후는 이 거대한 절벽에 자신의 권력을 투사할 욕심을 품는다.

 

 

 

이 절벽에서 가장 터가 좋은 곳에, 웅장한 석불을 조성할 수 있는 곳에...

분명히 먼저 조성된 크고 작은 동굴들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 깍아내고 이곳에 황제의 위엄을 조각했다.

 

---  어디까지나... 상상 소설입니다. ----

 

 

 

 

이 절벽의 맞은 편 산은 향산이고...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가 이하를 굽어보는 산기슭에 살았다고 한다.

측천무후의 불상이 보이는 맞은 편이다.

바로 그 백거이가 살았다고 하는 집터에 근래에 향산사라는 절을 지었다.

현대에 지은 절을 보는데는 흥미가 없어서...무더운 날씨에 절을 보는 것은 포기했다.

그 대신 5분 정도 더 걸어내려가서 백거이의 무덤을 둘러보았다.

 

 

 

 

낙양에서 다시 서안으로 고속열차를 타고 돌아온다.

오른편에 계속 황하의 지류를 보며 오다가 서안에 다와서 강을 건넜다.

역시 황하의 강물은 상류부터 누렇다.

 

 

 

 

 

오후 네시... 열차 밖의 온도가 38.8 도.... 한참 더울 시간에는 40도를 넘겼겠다.

 

 

 

 

 

중국 여행 일정의 마지막은 서안의 재래시장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가이드가 소매치기가 많으니 각별히 주의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다행히 우리 일행은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저만치 진시황릉에서 보았던 제일 복잡한 한자 '뼝'자 간판이 보인다.

 

 

 

 

서안의 옛 성곽 둘레는 14킬로미터이고 지금도 잘 보전되어 있다고 한다.

옛 시가지의 가운데에는 우리나라처럼 궁궐이 있지 않고 고루(鼓樓)와 종루(鐘樓)가 있다.

고루는 밤에 북을 쳐서 시민들에게 시각을 알리고

종루는 낮에 종을 쳐서 시각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고루의 북쪽에는 聲聞于天, 남쪽에는 文武盛地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백성의 소리는 하늘처럼 듣고, 문무가 융성한 곳이라는 의미일까...

 

 

 

 

고루에서 얼마되지 않는 곳에 종루가 보인다.

 

 

 

 

 

 

서안 재래시장을 야시장이라고 한다. 夜시장인 줄 알았더니...한자로 野시장으로 쓴다고 한다.

아마 옛날에는 건물이 없이 넓은 장마당이었던 듯하다.

장터 한가운데에는 이렇게 힘자랑하는 할배도 있었고...

 

 

 

 

서안의 옛 성벽을 뒤로하고...

언제 다시 차분하게 둘러보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이 계절은 아니다.

휴가철이라 너무 사람이 많고....너~~무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