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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일기/탐사일기

2013. 8. 8. 시안(西安)에서 양귀비와 진시황을 만나다.

 남매들과 부모님 모시고 4박3일 중국여행을 다녀왔다.

서안과 낙양에서 병마용, 화청지, 소림사, 용문석굴을 구경하는 일정이다.

서안은 진시황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할 때 수도였고, 당시의 지명은 '함양'이었다.

몇 왕조가 지난 후 당나라 때에 '장안'으로 개명하여 다시 수도가 된다.

 

 

 서안의 파라다이스호텔. 서안은 섬서성(陝西省)의 성도이고, 서안의 인구는 850만 정도이다.

 

 

 

 

서안역사박물관, 선사시대, 진나라, 수나라, 당나라 시대의 유물이 주로 전시되어있다.

중국의 4대 박물관의 하나라고 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병마용의 얼굴들...

15,000개 정도 발굴된 군인들의 얼굴 모양이 다 다르다고 한다.

헤어스타일과 수염만 빼고는 2200 여년 전 중국인의 얼굴이나 지금의 얼굴이나 다르지 않다.

 

 

 

진시황의 무덤에서 나온 노(弩)와 노리개.

그 시대에는 저런 활을 쇠뇌 또는 노(弩)라고 하였다.

 

 

 

 

 당나라 시대의 도자기, 주로 세 가지 색깔을 썼다고 해서 당삼채(唐三彩)라고 한다.

우리의 고려자기 대접을 받는 국보급 유물이다.

 

 

 

 

 

서안에서 동쪽으로 약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당현종과 양귀비의 휴양지 화청지(華淸池)가 있다.

이곳은 황실과 귀족들의 온천휴양지가 있던 유적을 복원한 것으로, 당시의 건물은 거의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양귀비와 당현종이 사랑을 나누었으리라..짐작만 해 보았다.

 

 

 

 

 

화청지의 뒷산이 여산이다.

야간에는 이 연못, 건물, 뒤의 여산 전체가 무대가 되어 양귀비를 주제로 한 뮤지컬이 공연된다.

가이드 말로는 관람료가 우리 돈으로 6만원 정도지만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고 한다.

 

 

 

 

 

양귀비의 대리석 상이다. 양귀비가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모습이다.

여자가 묻는다. '내가 이뻐? 양귀비가 이뻐?'

남편의 표정은...(어이 없어...)

 

 

 

 

 

 

이번 여행에 똑딱이 하나 들고 갔더니....사용법을 잘 몰라서 무조건 똑딱똑딱 눌렀다. 어두운 실내에서 많이 흔들렸다.

양귀비의 목욕탕인데.. 가운데 동그란 구멍에서 온천수가 나왔다고 한다.

 

 

 

 

 

 

 현종과 양귀비가 같이 목욕하던 곳...

 

 

 

 

 

 

 

 담쟁이에 싸인 건물은.. 화청지 유적지 중에 유일하게 남은 오리지널이라고 한다.

양귀비가 목욕을 마치고 머리를 말리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높은 누각이라 바람이 잘 불 것이니... 그럴듯한 이야기다.

 

 

 

 

 

 

 

 화청지를 떠나면서 ... 담은 양귀비의 옆 모습.

 

 

 

 

 

 

 

 

 화청지에서 가까운 곳에 진시황릉이 있다.

이 사람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겠지만...지금은 이 사람이 수많은 후손들을 먹여살리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평일인데도 진시황의 무덤과 병마용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뒤에 보이는 자그마한 동산 같은 것이 진시황릉이다. 높이는 약 20여 미터인데

가까이 가면 그냥 언덕이므로, 사람들은 문패앞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원래 조성 당시에 60여 미터였던 것이 풍화 침식으로 낮아진 것이 이 정도라고 한다.

 

 

 

 

 

 

 

중장비가 없던 시절에.... 저 높이의 세 배나 되는 산을 만들려면

연 인원 수백만 명이 몇 십년은 걸렸을 대공사로 짐작이 된다.

 

 

 

 

 

 

병마용갱은 황릉으로부터 약 2km 서쪽에 있다.

가는 길 옆에 ... 중국 한자중에서 가장 획수가 많다는 한자가 식당 앞에 있었다.

이 한자를 쓰는 특별한 국수가 이 식당의 메뉴인 모양이다. 

우리식 발음으로는 '뼝'으로 읽는다고 한다. 세어보니 57획이었다.

 

 

 

 

 

 

 

병마용 1호 갱이다. 진시황의 보병부대로 추정된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내 생각으로는 고대 전투대형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앞 열의 군인이 쓰러지면 계속 뒤에서 인원을 보충하며 대형을 유지하는 고대의 전형적인 방진이다.

 

 

 

 

 

 

뒤 편에서는 계속 발굴과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 진열된 병마용은 조각들을 끌어모아 맞춘 것들이라고 한다.

현재 까지 발굴된 병마용은 15,000 여 개이고 앞으로 얼마가 더 나올지 모른다고 했다.

 

 

 

당장이라도 전투에 돌입할 듯한 긴장감이 감도는 대형...

 

 

 

3호 갱은 사령부다. 오늘날의 야전지휘소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카메라가 많이 흔들렸다.

사람들의 홍수에 떠밀려 가다 보니...사진 하나 제대로 찍을 상황이 되지 못한다.

 

 

 

2호 갱은 기병부대가 있는 곳이다.  이 파도처럼 보이는 것은 병마용갱의 지지목들이 토압에 주저 앉은 것이다.

이 지붕을 걷어내면 말과 기병들이 나오는데 많이 파손되어 발굴하지 않는다고 한다.

2호 갱도 부분적으로 발굴, 복원 된 곳이 있는데...사람들에게 떠밀려 다니느라 사진도 찍지 못했다.

 

 

 

 노병(弩兵), 즉 쇠뇌(활의 일종)를 쏘는 병사의 발사 준비 자세다.

이런 자세 하나만 보더라도 진시황의 군대는 정예부대였음을 알 수 있다.

신발 코의 높이가 신분을 말해준다고 한다.

이 병사의 신발코는 낮으므로 하급무사이다.

 

 

 

이 노병의 뒷모습, 군화의 바닥무늬까지 정교하게 새겨 놓았다.

이 병사의 옷에 붉은 색채가 남아있다.

다른 병마용들도 발굴 당시에는 색채가 있었는데 공기에 노출되면서 다 사라졌다고 한다.

 

 

 

 

중급 무사의 병마용이다. 아마... 오늘날의 위관 장교쯤 될까..

신발 코가 약간 올라와 있다.

 

 

 

 

고급 무사다. 신발 코가 더 솟아 있다. 오늘날의 령관 장교??

 

 

 

 

병마용 박물관에서 최고의 보물이다.

진시황의 4륜 마차를 약 1/4 비율로 축소하여 청동으로 만든 진품이다. 

어두운 곳에서 똑딱이가 맥을 추지 못하고 흔들렸다.

 

 

 

 

그 바로 뒤에 진시황의 온량거(溫凉車) 모형이 있다.

즉 냉난방 장치가 잘 된 마차로 진시황의 장거리 순행에 쓰였다고 한다.

진품은 상해에서 진열되고 있고, 이것은 복제품이다.

 

종일 걸어다니며 구경하느라 다리가 많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