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1/가을에 피는 꽃

뚱딴지 삼대가 뚱딴지의 씨를 말리다

 

뚱딴지

Helianthus tuberosus L.

 

들에 나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1.5~3m.

줄기 윗부분에서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8~10월 개화. 두상화의 지름 6~8cm.

땅속의 덩이줄기를 식용, 약용 또는 사료용으로 쓴다.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한국 전역에 분포한다.

[이명] 돼지감자, 뚝감자(북한명)

 

 

 

 

‘뚱딴지’란 행동이나 사고방식 따위가 너무 엉뚱한 사람, 또는

완고하고 우둔하며 무뚝뚝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드물게는 뚱뚱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뚱딴지'는 또 해바라기속(속명 Helianthus는 태양의 꽃이라는 뜻임)의

여러해살이풀의 식물명이기도 하고,

전기 설비에 사용되는 절연체인 ‘애자’의 다른 이름으로도 쓰인다.

 

사람과 식물과 물건을 지칭하는 이 세 가지의 쓰임에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뚱뚱함과 엉뚱함’일 것이다.

들꽃 중에서 가장 키가 큰 축에 드는 ‘뚱딴지’는

그 늘씬한 모습에서 뚱딴지같은 이름이 나오지는 않았을 터이고,

흔히 돼지감자라고 하는, 뚱뚱한 땅속줄기에서 나온 이름일 것이다.

이 식물의 종소명 ‘tuberosus’도 덩이줄기(塊莖)라는 뜻이다.

 

게다가 국화과인 이 식물에 감자를 닮은 뿌리가 달린 것도

포도덩굴에서 사과가 열린 만큼이나 뚱딴지같은 일이다.

전기 설비에 쓰이는 뚱딴지는 사기로 만들어서 모양이 투박하고,

뚱딴지의 괴경 색깔을 닮은 고동색을 많이 쓰므로

뚱딴지의 이름을 차용해서 쓰는 듯하다.

 

 

나는 뚱딴지를 볼 때마다 가난했던 옛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북아메리카 출신인 이 식물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이 뚱딴지조차 없어서 못 먹던 시절이 불과 반세기 전이었다.

그저 주린 배를 채우려고 먹었다.

그 시절은 먹고 죽지만 않는다면 모든 식물이 귀했다.

뚱딴지는 달작지근하고 아삭아삭해서 더욱 귀한 대접을 받았다.

 

요즘 가을 들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뚱딴지들은

이제 이 땅이 굶주림을 완전히 벗어났다는 기념비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북녘 땅에는 아무래도 뚱딴지가 살고 있을 것 같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뚱딴지를 쏙 빼닮은 삼대(三代)의 통치 아래서

이미 오래 전에 뚱딴지의 씨가 말라버렸으리라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백성들이 살아가는 형편에 따라 한 식물의 운명도 극명하게 갈리는

참으로 기묘한 땅, 기묘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2010. 11. 9. 에 쓴 글을 2013. 8. 7. 에 고쳐 쓰다.

꽃 이야기 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