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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제주도와 울릉도

피뿌리풀의 멸종

 

피뿌리풀

Stellera chamaejasme L.

 

들의 풀밭에 나는 팥꽃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30~40cm.

뿌리가 굵고 핏빛이며 독이 있다. 잎은 어긋나게 촘촘히 달린다.

5~7월 개화. 꽃은 원줄기 끝에 15~22 송이씩 두상으로 달린다.

한국(황해도 이북), 중국, 몽골, 시베리아 동부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피뿌리꽃, 처녀풀, 서흥닥나무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피뿌리풀이 멸종된 듯하다.

한 종의 멸종을 어떻게 판단하고 결론내는지 모르겠으나,

이것을 몰래 캐어 팔았던 사람이 더 이상 물건이 없다고 했다면

 정부 기관이 조사한 것 보다 결과가 빠르고 신뢰성이 높다.

 

희귀한 식물을 채취하는 사람, 공항과 항구에서 눈감아 주는 사람,

중간 상인, 철없이 이런 것들을 기르는 사람들의 묵시적 합의로

몇 종의 식물이 사실상 멸종되었다고 나는 파악하고 있다.

피뿌리풀, 풍란, 해오라비난초처럼 공유해야 할 아름다움들이

개인의 소유가 되면서 몇 사람들의 주머니 속 지폐 몇 푼으로 바뀌었다.

 

(2008년에 촬영한 제주도의 피뿌리풀, 더 이상 자연상태에서는 볼 수 없다고 한다. 박해정 님 사진)

 

피뿌리풀은 제주도에서만 살았던 풀이다.

뿌리가 피처럼 붉어서 ‘피뿌리풀’이라고 부른다는데,

이 풀은 함부로 뿌리를 캐 볼 정도로 흔한 풀이 아니었다.

게다가 ‘처녀풀’이라는 이명을 보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지 굳이 아랫도리를 들쳐볼 것까지야 있겠는가.

 

몇 해 전, 무슨 분재전시회에 출품된 이 꽃을 처음 보고서

제주도의 풀밭에서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자연에서 오래 보전될까하는 염려가 되기는 했었다.

다행히도 몽골의 초원을 다녀온 지인 한 분으로부터

몽골의 초원에는 이 풀이 잡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몽골에 사는 풀이 어떻게 제주도까지 왔을까?

 

(몽골 초원에 잡초처럼 자라는 피뿌리풀, 이남희 님 사진)

 

생각해 보니 13세기에 몽골이 고려를 점령했을 때,

제주도에서 몽골의 말을 길러 바치게 했던 일이 있었다.

여름이 짧은 몽골의 초원보다는 겨울에도 따뜻한 제주도가

말을 기르기에는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몽골 말의 털 같은 신체의 일부나 마구(馬具)에

피뿌리풀의 씨앗이 붙어서 제주도로 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피뿌리풀은 이 땅에 800년을 살다가 간 것이다.

 

피뿌리풀은 특별한 복원 사업을 하지 않는 한

제주도에서 더 이상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우리 고유의 식물이 아닌 것을 되살려야 할까싶기도 하지만,

피맺힌 역사의 뿌리를 깨우쳐주는 의미 있는 식물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제주에서 피뿌리풀을 만나보고 싶다.

 

 

2011. 9. 19.   꽃 이야기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