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2/그 곳에만 피는 꽃

지네발란과 지네의 유유상종

 

지네발란

Sarcanthus scolopendrifolius Makino

 

바위나 나무줄기 위에 밀착하여 사는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환경부 멸종위기식물 II급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환경변화에

의한 감소보다는 관상용으로 불법 채취되는 경우가 많다.

6~7월 개화. 한국(전남 도서, 제주),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지네난초

 

 

 

 

 

어느 해 여름, 남도에 지네발란을 보러간 야생화 동호인들이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대박’의 행운을 만났다.

지네의 모양을 빼닮은 지네발란이 꽃을 잘 피워서 감탄하고 있는데,

그와 때를 맞추어 정말 멋진 지네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네발란이 뒤덮은 바위를 지네가 패션모델처럼 행진하자,

동호인들은 흥분하고 감탄하며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야행성으로 알려진 지네의 대낮 출현은 대박이 아닐 수 없었다.

 

지네발란이나 지네는 다른 식물이나 동물이 엄두를 못내는

바위절벽에 달라붙어 살아야하고 기어 다녀야하기 때문에,

동물과 식물의 경계를 넘어서 같은 목적으로 닮게 된다.

유유상종(類類相從)한다는 옛말이 있다.

사물은 같은 무리끼리 따르고, 같은 사람은 서로 찾아 모인다는 말이다.

 

(지네 대박을 만난 동호인으로부터 얻은 사진, 김용대님 제공)

 

나는 지네와 지네발란이 유유상종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지네가 좋아한다는 닭뼈를 구해서 지네발란 군락지를 찾았다.

지네가 출몰할만한 습한 틈새에 귀한 선물을 놓고서

도시락까지 먹으면서 기다렸지만 끝내 지네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나의 가상한 노력은 뜻밖의 행운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곳은 너무 오지라서 지네가 고급 요리를 몰랐을까?

 

우리나라의 전설이나 옛날이야기에는 지네가 많이 등장한다.

신임 사또가 부임한 첫날 밤에 큰 지네와 여우가 나타나서 어쩌고...

하는 이야기에서 지네는 ‘토(土)’를 여우(狐)는 ‘호(豪)’를 은유한다.

무슨 괴담 같기는 하지만 토호(土豪)들의 협박과 유혹에 굴하지 않는

사또야 말로 진정한 목민관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이런 이야기에서 발이 많아서 어디에나 잘 달라붙는 지네는 토착세력을 상징한다.

그들은 혈연, 지연, 학연으로 유유상종하며 이익과 권력을 나누는 거래를 한다.

 

유유상종이라는 말 자체에는 옳고 그름이 없으나,

그 쓰임을 보면 좋은 뜻으로 쓰이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한 언어습관의 바탕에는 군자나 선비는 패거리를 짓지 않는다는

유교적 윤리관이 깔려 있는 듯하다.

유유상종은 ‘끼리끼리 논다’는 정도의 표현이니 함부로 쓸 말은 아니지만,

요즘 세태에는 권력과 재력, 사치와 천박의 유유상종이 도를 넘는 듯하다.

 

 

2013. 3. 12. 꽃 이야기 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