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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그 곳에만 피는 꽃

바람꽃이 시들지 않는 까닭은...

 

 

바람꽃

Anemone narcissiflora L.

 

높은 산에 나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20~40cm.

6월 말~8월 개화. 하나의 줄기에서 3~4 개의 꽃대와 비슷한 수의

줄기가 나와 꽃을 피우면서 다음 줄기를 준비한다.

한국(중부 이북, 주로 설악산) 등 북반구 고산지대에 분포한다.

[이명] 조선바람꽃

 

 

 

 

 

 

"처녀총각이 서로 좋아했는데, 처녀 부모가 강제로 딴 데다 시집보냈대.

그 총각은 밤낮 둘이서 만나던 뒷산 바위로 가서 울었는데,

어느 밤중에 달려가 보니 이상한 꽃이 피었더래, 허깨비를 본건지,

바위 위에서 떨어져 죽었대. 그때부터 뒷산에서 부는 바람소리는

그 처녀의 이름을 부르는 그 총각의 목소리 같았다나...

그 바위에 올라가면 사랑하는 사람들한테만 뵌다는 꽃을 볼 수 있대.

바람꽃이라지 아마?......"

 

... 유안진의 소설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 중에서 ....

 

 

이 소설에 등장하는 바람꽃은 전설 속의 꽃이다.

유안진 시인은 이 소설이 TV드라마로 제작된 후 인터뷰에서

바람꽃은 실존하지 않으며 작가가 만들어낸 상상의 꽃이라고 했다.

작가는 바람꽃이 실제로 존재하는 꽃인지 몰랐던 것이다.

 

바람꽃은 우리나라에 피는 여러 가지 바람꽃 중에서 가장 늦은

7월 중순경에 설악산 대청봉일대에서만 피는 보기 드문 꽃이다.

우리나라에는 굳이 설악의 바람꽃이 아니라도 문학적으로

바람꽃이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꽃이 열댓 가지나 더 있다.

 

어떤 사람들은 들꽃에 대한 작가의 무지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나는 작품 속에서 이리도 애틋한 전설의 꽃을 피워낸

작가의 창조적 상상력에 오히려 갈채를 보내고 싶다.

그런데 왜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 것일까?

소설 속에는 분명한 답이 없다.

그것은 온전히 독자가 저마다의 의미를 부여할 몫이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언제나 미묘한 바람이 흐른다.

그것이 사랑으로 피어나면 '바람꽃'이 되고,

이루지 못한 사랑은 시들지 않는 추억으로 남는다.

사람들은 가슴 속 깊은 곳에 죽는 날까지 시들지 않는,

저마다의 '바람꽃'을 간직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연의 일치인지 대청봉의 바람꽃도 시들지 않는다.

그곳의 여름은 늘 안개비와 바람이 감싸고 있기 때문에

바람꽃은 시들기 전에 바람에 꽃잎을 날려 보낸다.

 

 

2008. 3. 꽃 이야기 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