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2/바닷가에 피는 꽃

바람만이 알고 있는 갯완두의 역사

 

갯완두

Lathyrus japonicus Willd.

 

바닷가의 모래땅에 나는 콩과의 여러해살이풀.

땅속줄기가 발달하였으며 땅위줄기는 60cm 정도 뻗는다.

5~6월 개화. 바닷가의 모래 유실을 방지하는 식물이다.

한국(전역) 및 북반구의 바닷가에 널리 분포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갯완두를 '해변의 모래나 자갈밭에서

제멋대로 기어 다니며(sprawling) 자라는 식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제멋대로 기어 다니는’ 자유는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도 같지만

바닷가의 모래밭은 염분이 많고 메마른데다가 영양분도 없는 곳이다.

 

식물들은 온도, 수분, 일조량, 토양 등이 정한 생존의 한계 안에서 사는데,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식물들만이 ‘제멋대로’의 특권을 누린다.

갯완두는 사람으로 치자면 얼음나라에 사는 에스키모들이나

사막의 베두윈족처럼 생존의 극한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식물이다.

'Freedom is not free'라는 말대로 자유는 공짜가 아닌 것이다.

 

 

갯완두의 몸에는 수십만 년 전인지 수백만 년 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자유를 찾아 내륙에서 바닷가로 나왔을 것'이라는 단서가 있다.

잎줄기 끝에 있는 손목시계의 초침 같은 덩굴손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덩굴손은 분침과 초침처럼 두 갈래로 갈라져 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단 하나의 초침만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것은 덩굴손처럼 꼬부라져 있기도 하다.

바닷가에는 덩굴손으로 감을만한 주변 식물도 별로 없거니와

모래땅을 기면서 줄기를 뻗어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갯완두의 덩굴손은 지금도 퇴화가 진행 중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갯완두 잎줄기 끝에 남은 시계의 가느다란 초침에서

수백만 년을 이어온 장엄한 자연사의 한 대목을 읽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수만 년, 아니 수백만 년이 흐른 후에는

인간의 꼬리뼈처럼 퇴화된 흔적기관으로 남을는지도 모른다.

 

 

푸른 바닷가 하얀 모래밭에 핀 갯완두의 무리를 보노라면

1960년대에 밥 딜런(Bob Dylan)이나 존 바에즈(Joan Baez)가 불렀던 노래,

‘바람에게 물어봐 (Blowing In The Wind)’의 가사가 생각난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높은 산이 씻겨 내려 바다로 사라질까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를 얻을까

.....................

친구야, 그건 바람에게 물어봐 바람은 알고 있을거야 '

 

 

2010. 1. 28.   꽃 이야기 17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