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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1/여름과 가을사이

아주 오래된 이름, 멸가치

 

 

멸가치

Adenocaulon himalaicum Edgew.

 

산이나 들의 그늘지고 습한 곳에 자라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50~100cm. 8~10월 개화. 봄에 어린잎을 나물로 먹는다.

한국(전역), 일본, 중국, 히말라야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개머위, 명가지, 옹취, 총취

 

 

 

 

 

멸가치는 그늘진 등산로를 따라 흔히 볼 수 있는 풀이다.

작은 방망이 같은 열매에 끈적끈적한 돌기가 나 있어서

사람들의 바지자락에 씨앗이 잘 붙어 퍼지기 때문이다.

 

무심코 지나치면 꽃을 피웠는지 보이지도 않지만

몸을 낮추어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꽃이 여간 예쁘지 않다.

크기만 하다면 신부의 부케 못지않게 아름다운 이 꽃은

그 이름이 귀에 설었던 탓에 별로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멸가치처럼 그 뜻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우리 꽃 이름들이 많다.

멸가치, 명아주, 산해박, 영아자, 조뱅이, 지칭개 같은 이름들은

이 땅에서 수천 년 살아온 토박이 같은 친근감은 들지만,

한자말에서 유래된 이름인지 우리말 이름인지도 알 수가 없다.

 

이들은 특별히 맛있거나 약효가 뛰어나지도 않아서

양반 중심의 기록문화유산에서 그 내력을 더듬기도 어렵다.

이 이름들은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고을에서 고을로 전해지면서

그 지방의 발음 습관에 따라 변음이 되고 재탄생되기도 했을 것이다.

 

 

‘멸가치’도 그러한 이름들 중의 하나인 듯싶다.

여느 토박이 식물들처럼 호로채(葫蘆菜), 개머위, 선경채, 옹취 등의

이명들이 있지만 그 중 어느 이름에서도 유래를 짐작하기가 어렵던 차에,

어느 날 멸가치를 캐는 할머니를 만나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봄나물로 먹을만 하다며 멸가치를 뜯던 그 할머니는

그 풀이 말발굽을 닮았다고 그 지방에서는 ‘말굽취’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말굽취'가 '멸가치'로 변했을 법하지 않은가? 

 

우리 풀꽃의 이름에 '멸'자가 들어가는 것이 별로 없다보니,

나는 '멸가치'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諦)를 습관처럼 떠올리고는 했다.

그리고는 '꽃 이름에 대한 집착을 멸(滅)하는 것이 곧 도(道)에 이르는 길'

이라고 그 이름의 유래를 풀지 못하는데 대한 위안을 삼았다.

 

그러자 멸가치가 이렇게 화답했다.

'멸(滅)'하라! 인간의 ‘가치’로 꽃을 보려는 생각을,

세상의 모든 생명은 스스로 고유하며 귀한 것이니...

 

 

2013. 2. 23. 꽃 이야기 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