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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1/여름과 가을사이

야화식물(野化植物) 어저귀

 

어저귀

Abutilon theophrasti Medicus

 

인도 원산, 아욱과의 한해살이풀. 높이 1.5m 가량.

둥근 줄기의 껍질을 섬유용으로 쓰기위해 재배했으나,

현재는 과거의 경작지 부근에서 야화되어 자생한다.

7~9월 개화. 전세계적으로 분포한다.

[이명] 모싯대, 오작이, 청마

 

 

 

 

 

 

 

어저귀는 꽃들의 왕이 되고 싶어서 씨방을 왕관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를 가당치않게 여긴 신의 노여움을 사서

어저귀의 씨방이 연탄처럼 시커멓게 변했다고 한다.

 

옛말에 높은 지위에 써주지 않음을 한하지 말고

먼저 그 지위를 감당할 그릇이 되는지 염려하라 했거늘

왕관만 쓰면 왕이 되리라는 생각은 어저귀의 오산이었다.

그런 전설 때문에 어저귀의 꽃말이 ‘억측’이 되었나 보다.

 

어저귀는 원래 인도가 원산지였으나 섬유작물로 효용이 높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래식물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농민의 고단함을 표현한 시가 있다.

‘어저귀 먼저 베고 삼밭에 호미질 / 늙은 할멈 쑥대머리 밤에사 빗질하네

일찍 자는 첨지영감 발로 차 일으키네 / 풍로에 불붙이고 물레도 고쳐야지‘

어저귀를 섬유로 가공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중국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

회반죽에 어저귀를 잘게 썰어 넣어 벽돌을 쌓는다는 기록이 있다.

또 어떤 논문에 의하면 어저귀 펄프로 만든 한지는

닥나무로 만든 보통 한지와는 다른 먹 번짐의 특성이 있다고 한다.

 

 

오늘날 어저귀는 더 이상 경작되지 않고 밭에서 쫓겨나

논둑이나 밭둑에서 그 이름처럼 어정거리고 있다.

어저귀의 씨방을 보면 연탄이 연상되는데

요즈음은 연탄도 소용이 줄어서 머지않아 어저귀 신세가 될 것 같다.

 

인도에서 건너온 식물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저귀를 볼 때마다 참 인도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어저귀의 꽃, 잎, 씨방의 색과 형태를 보면

인도의 국기와 아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미국에서 들어왔거나 이름에 ‘미국’이 붙은 식물들,

이를테면 미국쑥부쟁이, 미국자리공, 미국가막사리 등등이

우리 생태계를 우려스러울 정도로 잠식해 가는데 비해

인도에서 전래된 이 식물은 그야말로 ‘인도스럽게’

문명의 뒤안길에서 어정거리고 있는 느낌을 준다.

 

어저귀처럼 한 때는 경작이 되던 식물이 효용이 떨어져

야생으로 다시 돌아간 식물을 야화(野化)식물이라고 한다.

나도 언젠가 ‘야화인간(野化人間)’으로 돌아가고 싶다.

 

 

2013. 2. 26.   꽃 이야기 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