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3/산과 들 사이에서

플렉시블 어댑터 누린내풀

 




누린내풀

Caryopteris divaricata (Siebold & Zucc.) Maxim.

 

낮은 산자락에 자라는 마편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약 1m.

줄기가 네모지며 전체에 짧은 털이 있고 불쾌한 냄새가 난다.

8~10월 개화. 길이 3cm 정도의 꽃이 줄기나 가지 끝에 달린다.

[이명] 노린재풀, 구렁내풀.

 

 

 

 

 

 

누린내풀은 한적한 산자락에서 뜻밖에 만나는 풀이다.

그리 흔하지는 않지만 아주 귀한 풀도 아닌 까닭이다.

이 꽃의 첫 인상은 영락없이 어사화(御賜花)다. 

꽃 위로 길게 솟아 앞으로 늘어진 꽃술이 옛날에 임금이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게 하사했다는 어사화를 닮았다.

 

처음 이 풀을 만났을 때 주둥이가 아주 긴 벌이 찾아왔다.

이 벌이 꽃에 앉아 긴 주둥이를 꽃 속으로 찔러 넣는 순간,

어사화처럼 생긴 꽃술이 큰 각도로 숙여지면서

정확하게 벌의 꽁무니를 찍는 것을 목격하고서는

저렇게 별나게 생긴 벌이라야만 수분이 되는가 보다 했다.

 

그 이듬해에 이 풀을 만났을 때는 보통의 벌들과

흰나비까지 이 꽃을 찾아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0.1밀리도 안 되는 나비 날개의 등에 꽃가루를 찍는 모습은

 절묘한 서커스 동작 같아서 나도 모르게 감탄이 터졌다.

어떤 크기, 어떤 모양의 곤충이든지 가리지 않고

정확하게 꽃가루 도장을 찍는 일은 얼마나 놀라운가.

 

전에 보았던 주둥이가 긴 벌과 전혀 다른 곤충들인데도

꽃술이 바로 숙여지면서 그들의 등에 도장을 찍는 걸보면

이 풀은 플렉시블 어댑터(flexible adapter)임이 분명하다.

 

 

이 풀 옆에서 곤충들이 들락거리는 모습을 관찰하노라면,

그리 유쾌하다고는 할 수 없는 야릇한 냄새를 맡게 된다.

누린내풀의 특별한 꽃 모양과 그 재주를 보자면

어사화풀이라든지 도장풀이든지 좋은 이름을 얻었음직도 한데,

이 풀의 이름과 별명들은 오직 그 고약한 냄새 때문이다. 

꽃은 아름답지만 그 냄새 때문에 가까이 하지 않는 풀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그 향기가 짙어진다.

좋은 향기를 내는 사람은 찾는 사람이 많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되도록 멀리하려 한다.

 

어떤 사람은 말과 표정에서 향기가 난다.

그것은 맑고 향기로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다행이다. 타고난 꽃의 향기는 어쩔 수 없으나

사람의 향기는 아름답게 가꿀 수 있으니...

 

 

2012. 11. 27. 꽃이야기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