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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1/여름과 가을사이

파브르의 목숨을 구한 쐐기풀

 

혹쐐기풀

Laportea bulbifera (Siebold & Zucc.) Wedd.

 

숲속에 나는 쐐기풀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40∼70cm.

줄기와 잎에 눈에 잘 띄지 않는 가시 같은 독침이 있다.

잎겨드랑이에 주아(珠芽)가 달려 번식하므로 혹쐐기풀이라고 한다.

7~8월 개화. 잎을 약용한다.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알쐐기풀

 

 

 

 

 

 

들꽃을 사랑하는 벗과 함께 꽃을 탐사하는 일은 즐겁다.

어느 날 함께 탐사를 하던 동호인 한 분이 길섶에 난 풀을 만지며 물었다.

‘이것이 모시풀인가요, 쐐기풀인가요? ... 앗 따거라!’

‘하하하, 그 풀이 쐐기풀이라고 스스로 밝히는구먼요.’

 

쐐기풀이나 모시풀 종류는 숲이나 들에 흔한데다가,

별로 예쁜 구석도 없어서 눈길을 끌지 못하는 식물이어서

오랫동안 들꽃을 즐겨 찾은 사람들조차도 이런 변을 당한다.

게다가, 쐐기풀과에는 무슨 모시풀이나 쐐기풀, 거북꼬리 등

비슷비슷하게 생긴 풀이 수십 가지나 있으니 말이다. 

 

그날 만난 풀도 집에 돌아와서야 '혹쐐기풀'로 이름을 확인하였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무슨 쐐기풀이 아홉 가지나 나와있었는데,

혹쐐기풀은 잎겨드랑이에 주아가 있어서 쉽게 구별이 되었다. 

그냥 쐐기풀은 우리나라에 희귀해서 본 사람이 별로 없는 듯하다.

 

(혹쐐기풀, 잎겨드랑이에 붙은 주아가 보인다.)

 

파브르의 곤충기는 그가 쐐기풀의 덕을 톡톡히 본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파브르가 동호인들과 함께 1912미터 높이의 방투우산을 탐사할 때,

갑작스런 폭우와 짙은 안개로 방향을 잃고 조난을 당하게 되었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밤이 되었는데, 일행 중 누군가 쐐기풀에 쏘였다.

길을 따라 자라는 쐐기풀의 성질을 알고 있는 파브르는,

어둠 속을 더듬어 일부러 쐐기풀에 쏘여가며 대피소를 찾았다.

파브르는 그의 곤충기 제1장에서 그 때 대피소를 찾지 못했다면

고산의 추위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쐐기풀은 잎과 줄기에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독침이 있다.

그 침은 주사바늘 구조로 되어있다. 쐐기풀에 찔리면 벌이나 쐐기의 침처럼

개미산이 분비되어서 한참동안 꽤나 고통스럽다.

 

 

(쐐기풀의 독침)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 같은 쐐기풀이

도대체 무엇을 지키려고 그런 침과 독액을 만들었을까?

게다가 하필이면 길 주변에 자라서 인간을 괴롭히는 걸까?

어쨌거나 파브르는 그런 쐐기풀의 특징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칫 목숨까지도 잃을뻔한 위기에서 크게 덕을 본 셈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친해지면 달리 보인다.

쐐기풀 같은 독침을 가진 사람이 나의 스승이 될 수 있고

곤경에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능력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어떤 존재가 나에게 덕이 되거나 해가 되는 것은

오로지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쐐기풀과 파브르에게서 배웠다.

 

 

2012. 8. 16. 꽃이야기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