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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1/여름과 가을사이

산비장이가 벼슬을 받은 까닭

 

산비장이

Serratula coronata var. insularis (Iljin) Kitam. f. insularis

 

산기슭의 양지에 자라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50~140cm. 8~10월 개화. 어린순은 식용한다.

한국(전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큰산나물, 산비쟁이.

 

 

 

 

 

 

 

 

여름이 끝나갈 무렵 산에 들면

늘씬한 키에 붉은 꽃이 핀 산비장이를 만나게 된다.

산비장은 ‘산을 지키는 비장(裨將)’이라는 뜻이다.

‘비장’은 조선시대에 감사나 절도사가 데리고 다니던 막료로서,

비서업무나 민정시찰, 감찰업무 등을 수행하던 관직이다.

 

산에 사는 수많은 나무와 풀들 중에서

하필 이 녀석이 비장으로 뽑힌 까닭이 궁금하던 차에, 

어느 날 문득 유난히 붉은 산비장이의 꽃이 눈에 들었다.

그 꽃의 색깔과 모양이 어디서 본 듯 했다.

바로 조선시대에 무관들이 쓰던 모자, 

전립(氈笠)의 장식용 수술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좌측 사진 : 전립의 여러 가지 장식,

품계에 따라 장식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제일 앞의 화려한 것은 품계가 높은 무관,

갈색 전립이 비장과 같은 하급 무관,

장식이 없는 것은 병졸용으로 보인다.)

 

 

 

 

 

 

 

 

 

 

 

 

전립의 꼭지에 다는 장식은, 금, 은, 옥, 공작깃 등

무관의 품계에 따라 그 장식을 다르게 했다.

대체로 하급 무관이었던 비장의 전립 장식이

붉은 수술과 공작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산비장이의 잎은 새깃모양으로 갈라진 특징이 있는데

이 역시 전립을 장식하던 공작의 깃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사람들은 산비장이보다 '배비장'을 더 잘 알고 있다.

배비장은 신임 제주목사의 비장으로 제주에 사전 답사를 갔다가

명기 애랑에게 농락당해서 갖은 수모를 겪는 소설 속의 인물이다.

같은 소설에 등장하는 정비장 역시 전임 제주목사의 비장으로

애랑에게 생니까지 뽑아주고 가는 얼빠진 친구로 등장한다.

 

(산비장이의 꽃과 잎 모양은 비장의 전립을 장식하던 붉은 수술과 공작깃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비장이란 직책은 지방 수령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소임이니,당연히 충직하고 총명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훌륭하고 뛰어난 수많은 비장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웃음거리가 된 두 사람의 비장 이야기만 전해지는 걸 보면

세상인심이 참 고약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 못난 비장들 때문에 산비장이의 체면이 걱정이다.

훤칠한 키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산비장이가

자칫 얼간이 풀꽃으로 취급 받을까하는 염려 때문이다.

산비장이가 입이 있다면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부디 처신을 조심해서 가족이나 동료를 욕되게 하지 말게나" 

 

2011. 10. 28. 꽃이야기 5

 

 

** 덧글 **

 

전립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다가 뜻밖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발견했다.

우리가 먹는 전골이 전립을 뒤집어놓고 끓인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그 자료(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를 보면,

 

장지연(張志淵)은 ≪만국사물기원역사 萬國事物起原歷史≫에서

“전골(氈骨)은 상고시대에 진중에서는 기구가 없었으므로

진중 군사들이 머리에 쓰는 전립을 철로 만들어 썼기 때문에

자기가 쓴 철관을 벗어 음식을 끓여 먹었다.

이것이 습관이 되어 여염집에서도 냄비를 전립 모양으로 만들어

고기와 채소를 넣어 끓여 먹는 것을 전골이라 하여왔다.”고

그 유래를 설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