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2/제주도와 울릉도

우리나라 모든 풀꽃들의 왕회장, 왕호장근

 

왕호장근(王虎杖根)

Fallopia sachalinensis (F.Schmidt) RonseDecr.

 

마디풀과 닭의덩굴속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2~3미터 정도.

암수딴그루. 8~9월에 개화. 땅속줄기는 약용, 어린 줄기는 식용.

한국(울릉도), 일본(북부), 사할린 등지에 분포.

[이명] 큰감제풀, 왕호장, 왕싱아

 

 

 

 

 

 

호랑이 지팡이 뿌리를 뜻하는 호장근(虎杖根)이라는 식물이 있다.

‘호장(虎杖)’은 봄에 이 식물의 순이 지팡이 길이만큼 올라왔을 때,

마디마다 호랑이 무늬 같은 얼룩이 있어서 비롯된 이름인 듯하다.

줄기가 성장하면 호랑이 무늬는 사라지고 마디에 붉은색만 남는다.

 

‘호장’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이름에 ‘근(根)’자까지 붙인 것은

이 식물의 뿌리가 약으로 쓰인다는 암시로 보인다.

이 뿌리는 거풍(祛風)·이뇨·소종(消腫) 등의 효능이 있다.

‘호장근’이라는 이름을 차분하게 풀어보자면,

어린 줄기에 호랑이 무늬가 있는 식물로 뿌리가 약으로 쓰이며,

이 약재의 이름인 ‘호장근’이 식물자체의 이름이 된 것이다.

 

 

(왕호장근의 어린 줄기에는 호랑이 무늬가 있다. 사진은 그 무늬가 붉은 띠로 변한 다음에 찍어서 아쉬운 점이 있다. 울릉도에서)

 

자료상으로 호장근은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한다지만,

나는 육지에서 이 식물을 본 기억이 없다.

호장근은 들녘에 흔히 자라는 같은 마디풀과의 식물들,

즉 싱아나 소리쟁이류들의 모습과 꽃차례가 비슷해서

언젠가 만난 적이 있었어도 무심코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내가 호장근을 처음 만난 것은 울릉도에서였다.

울릉도에 사는 호장근은 정확히 말해서 왕호장근이다.

울릉도는 그 옛날 바다 밑 화산 폭발로 탄생한 역사에 걸맞게

지금도 활화산 같은 생명력으로 섬의 식물들을 크게 키워낸다.

 

 

(개화기의 왕호장근, 무리지어 나기 때문에 3 미터나 되는 큰 키를 유지할 수 있다)

 

왕호장근은 호장근보다 키가 두 배나 커서 3 미터 정도까지 자란다.

이것은 진달래나 철쭉, 닥나무 같은 웬만한 관목들보다도 큰 키다.

키만으로 보자면 왕호장근은 모든 풀꽃의 왕이며, 왕회장이다.

 

풀이 어떻게 3 미터까지 크게 자랄 수 있는가?

속을 비우고 마디를 만들며 자라기 때문이다.

가장 적은 재료로 가장 튼튼한 기둥을 만드는

물리학적 지혜를 이 풀은 이미 깨우친 것이다.

그리 크게 자라면서 어떻게 쓰러지거나 부러지지 않는가?

이웃과 더불어 서로 의지하며 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자연에 널려있는 평범한 진리를

교실이나 험한 세상에 비싼 대가를 지불하며

정말 재미없게 배우고 사는지도 모른다.

 

2012. 2. 6. 꽃이야기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