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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높고 깊은 산에서

한파에서 생사의 한계를 넘은 한계령풀

 

 한계령풀

Leontice microrhyncha S. Moore

 

높은 산의 비탈에 자라는 매자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30~40cm. 뿌리가 감자처럼 둥글다.

4~5월 개화. 한국(중부 이북), 중국 동북지방에 분포한다.

[이명] 메감자 (북한명)

 

 

 

 

 

 

해마다 4월이면 백두대간 산마루에 한계령풀 꽃이 핀다.

한계령(寒溪嶺)에서 처음 발견되어 한계령풀이라고 한다.  

그 이름만으로도 설악이 보이고 아름다운 노래가 들리는 듯하니,

한계령에서 먼저 눈에 띈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풀꽃은 태백산맥을 넘는 다른 고개에도 살고 있어서

하마터면 ‘곰배령풀’이나 ‘만항재풀’이 될 뻔도 했으니 말이다. 

한계령풀, 그 이름에서는 고산준령의 추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견디는 용기와 강인함까지 느껴진다. 

 

이 꽃이 피는 4월 하순은 이미 봄이 무르익을 무렵이지만,

백두대간의 높은 산마루에는 그 때까지도 간간히 눈이 내린다.

한계령풀은 잠깐 지나가는 눈과 추위에 겁먹지 않고

4월의 따사로운 봄볕을 한껏 누리는 현명한 식물이다.

보통 풀꽃들이 견디지 못하는 한파의 ‘한계’를 넘는 것이다.

 

(이남희 님 사진)

 

한계령풀은 눈보라가 치고 매서운 바람이 불면

아홉 개의 잎을 외투의 깃처럼 세워서 꽃을 지켜낸다.

이 잎은 세 개의 가지마다 석장씩 달린 ‘삼지구엽(三枝九葉)’이라서,

같은 매자나무과의 ‘삼지구엽초’와는 가까운 친척인 셈이다.

깽깽이풀과 꿩의다리아재비도 한계령풀과 친척벌이 된다.

 

 여기서 굳이 한계령풀의 친척들까지 들먹이는 까닭은,

매자나무과에 초본이라고는 이 네 가지 밖에 없기 때문이다.

넷 중에 깽깽이풀을 빼고는 세 가지가 ‘삼지구엽’이고,

꿩의다리아재비 외에 세 가지는 멸종위기종인데다가

모두 한 인물 하는 꽃들이라서 그 가문을 잠깐 들춰 본 것이다.

(*깽깽이풀은 2012에 보호식물 목록에서 해제되었다.)

 

아무리 어여쁜 깽깽이풀 꽃이라도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한계령풀이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것도 길어야 사흘이다.

현명한 사람은 지극한 영광의 순간에도 겸손을 잃지 않으며,

극한의 슬픔과 고통의 나날들도 담담하게 견뎌 낸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11. 11. 18.  꽃이야기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