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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백두산에 피는 꽃

백두산 풍경의 화룡점정, 두메양귀비

 

 

 

 

두메양귀비

Papaver radicatum Rottboell var. pseudo-radicatum Kitagawa

 

높은 산에 나는 양귀비과의 두해살이풀. 높이 10~20cm.

전체에 털이 많으며, 잎은 뿌리에서 뭉쳐나고, 깃 모양으로 갈라진다.

7~8월 개화. 한국(백두산), 중국 동북지방에 분포한다.

[이명] 두메아편꽃

 

 

 

 

 

백두산 고산초원에는 여름 한 철에만 수많은 꽃들이 핀다.

유월 말에 눈이 녹은 다음부터 한 달 반 남짓한 기간,

그 초원에 꽃 잔치가 벌어질 때가 백두산 풍경의 절정이다.

수많은 꽃들 중에서 두메양귀비가 단연 돋보이는 걸 보면

과연 천하일색 양귀비 가문 출신이다.

백두산의 풍경은 이 꽃으로 화룡점정이 된다.

 

양귀비는 당나라 왕조를 위태롭게 한 경국지색이었다.

그녀의 이름을 물려받은 양귀비꽃은 빼어나게 아름답지만

열매에 있는 모르핀 성분으로 많은 사람들을 망가뜨린 죄로

문명국가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도록 추방된 식물이다.

사실은 절세의 미모나 성분이 나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절제가 모자라서 비극적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양귀비 일가 중에서 또 하나의 슬픈 양귀비가 있다.

인류역사상 가장 전쟁이 많았던 플랑드르 벌판의 개양귀비다.

1, 2차 세계대전 때만해도 천만 명이 넘는 젊은이 들이 피를 흘렸던 

그 들판에서 붉게 피는 이 꽃은 전쟁의 참상을 무수히 보아왔을 것이다.

1차 대전이 한창일 무렵 어느 군인이 전우의 죽음을 슬퍼하며

‘개양귀비 들판에서’라는 시를 썼는데, 이 시가 애송되면서

영연방국가들에서는 이 꽃이 전사자를 애도하는 꽃이 되었다.

추모 행사 때 그들은 이 꽃을 가슴에 달고, 붉은 꽃잎을 뿌린다.

영국의 프로축구선수들도 1차대전 종전기념일인 11월 11일 경기 때에는

유니폼에 개양귀비 꽃을 달거나 꽃무늬를 새긴다.

 

양귀비 가문의 다른 형제들이 기름지고 풍요로운 땅에서

멸족을 당하거나 전쟁의 참화에 시달리는 동안

두메양귀비는 두메산골에서 평화롭게 살아왔다.

두메는 문명과 물산이 부족하여 삶이 불편한 곳이지만,

길이 멀고 험하여 인간의 탐욕 또한 닿지 않는 곳이다.

 

두메양귀비는 인간의 탐욕이 부딪치지 않는 곳에서는

사람뿐만 아니라 식물의 삶 또한 평온하다고 말한다.

무릇 풍요로운 곳에 탐욕과 분란이 있고

가난함이 있는 곳에 청빈과 평화와 있다. 

 

 

2011. 11. 15  꽃이야기 11

 

 

 

 

 

 

 

 

 

 

 

 

 

개양귀비 들판에서

                                                                 John McCrae

 

플랑드르 들판에 양귀비꽃 피었네,

줄줄이 서있는 십자가들 사이에.

그 십자가는 우리가 누운 곳 알려준다네.

하늘에는 종달새 힘차게 노래하며 날아오르건만

저 밑에 요란한 총소리 있어 그 노래 들리지 않네.

 

우리는 이제 운명을 달리한 자들.

며칠 전만 해도 살아서 새벽을 느꼈고 석양을 바라보았네.

사랑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였건만

지금 우리는 플랑드르 들판에 이렇게 누워 있다네.

 

원수들과 우리들의 싸움 포기하려는데

힘이 빠져가는 이 손으로 그대 향해 던지는 이 횃불 

그대 붙잡고 높이 들게나.

우리와의 신의를 그대 저 버린다면

우리는 영영 잠들지 못하리,

플랑드르 들판에 양귀비꽃 핀다 하여도.  

 

                                  (개양귀비가 피는 아르장띄유 들판, 쟝 클로드 모네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