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많이 내린 날 아침, 스키장처럼 미끄러운 도로를 운전하여 이중섭의 거주지를 찾았다.
서귀포 옛 골목길의 겨울 정취를 느끼고 싶어서 ...아니...겨울에 왔다가 겨울에 떠난 그를 보고 싶어서...
화가 이중섭. 잘 생긴 얼굴에 약간의 우수가 깃든 듯...
그는 그가 좋아하는 '소의 말'을 빌려 말한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1955년에 미도파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앞두고 그는 조금 상기된 표정이 된다.
6.25 때 피난 와서 그가 살았던 집. 애기동백이 빈 집을 지키고 있다.
지금 이 집에는 주인이 살고 있다. 중섭이 신세지고 있을 당시엔 이 집의 며느리였고, 중섭의 부인과 동갑이었다.
이중섭의 부인도 지금 일본에 생존해 있고, 가끔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연세가 아흔 여덟이라고 들었다.
중섭 가족이 머물던 곳은 저 끝 부엌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부엌문 안쪽에 부착된 안내문이다.
중섭 부부와 두 아들이 살던 1.4평 방. 지금 중섭의 사진이 놓인 자리에 이불을 얹어놓았지 싶다.
'가족'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이 좁고 길쭉한 방의 분위가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정방폭포에서 가족들이 물맞이하는 듯한 이중적 이미지다.
그래서 이중섭인가? ㅎㅎ
중섭은 아내에게 꽃을 바치고, 아내의 머리 위엔 행복의 비둘기가 있다.
벌거숭이 가족이 좁은 방을 꽉 채우고 있는한 불행이 스며들 여지가 없다.
중섭의 방 옆문이다.
그 옆문 옆에 기대어 담장을 보며 찍은 모습이다. 중섭이 살던 때, 이 나무는 없었다.
이 동네 사람이 중섭이 머물렀던 곳을 예쁘게 꾸미려고 나중에 심었다고 한다.
이곳을 중심으로 한 이중섭 거리는 서귀포의 옛 모습이 남아있어서 좋다.
여름철에 더욱 정겹고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거주지에서 몇 걸음 되지 않는 공터에서 여느 일상처럼 그가 앉아 있었다.
중섭이 거주하던 초가집 돌담에 이웃 사람이 심었다는 줄사철이 빨간 열매를 맺었다.
사철나무와 줄사철나무는 노박덩굴과라...열매가 노박덩굴과 비슷하다.
화가가 살았던 곳... 그가 떠난 지 70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의 주변은 어느 각도로 보아도 그림이다.
중섭이 살던 곳에서는 눈부신 서귀포 겨울 바다 위에 꿈꾸듯 떠 있는 섶섬이 보인다.
집앞에 들어선 건물들이야 허물 수 없겠지만...
이 평화로운 정경을 분단하고 있는 저 전봇대 하나는 참 거슬린다.
중섭이 이곳에 살았을 때... 이곳은 그림이었다.
왼쪽 앞과 오른쪽 가지가 누리끼리한 나무는 아무래도 멀구슬나무지 싶다.
중섭의 거주지 마당에 백 년은 훨씬 넘어보이는 고목으로 자라있다.
60여 년 전 그의 그림에 있는 수형과 현재의 수형이 다르지 않다.
그의 거주지 뒤에 이중섭 미술관이 있다. 미술관 뜰에 그의 시비가 서 있는데...
그가 왜 소를 그리 즐겨 그렸는지 이해가 된다.
문득 나의 삶이 건조해진다는 생각이 들 때...
이중섭을 만나면 왠지 위안을 받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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