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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깊은 숲 산중에서

그리운 아재비와 꿩의다리아재비


 

꿩의다리아재비

Caulophyllum robustum Maxim.


깊은 산의 숲에 자라는 매자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60~100cm.

줄기는 곧게 자라며, 잎은 어긋나고 2~3회 갈라진다. 5~6월 개화.

원줄기 끝에 지름 8~10mm의 꽃이 원뿔모양꽃차례로 달린다.





 

나는 아재비들이 많아서 행복한 유년을 보냈다.

 그 때까지도 전통적인 농경사회였던 두메산골에서

작은 아버지들과 고모들이 한 지붕 아래 살았고,

한 동네에만도 몇 촌 아재비뻘이 열 분이 넘었다.


아재비들은 산에서 나무를 하고 아가씨들은 들로 나물을 뜯으러 다녔다.

아재비들은 나뭇짐 위에 머루, 다래, 으름, 돌배 같은

맛난 것들을 장식처럼 달아와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하루는 작은집 아저씨가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토끼알을 주웠다며

알록달록한 알 다섯 개를 주면서 열 밤만 자면 토끼가 된다고 했다.



둥주리에 그 알들을 고이 넣어놓고 아기 토끼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더니

정말 열흘 후에 알들이 사라지고 토끼 새끼 다섯 마리가 고물대고 있었다.

철이 든 후에 동화 같은 그 옛일을 더듬어보니 그 알들은 꿩의 알이었고,

그 아재비는 미리 봐둔 토끼굴에서 어린 토끼가 젖을 떼기를 기다렸지 싶다.


꿈같은 추억을 만들어 준 그 아재비는 나에게 꿩의 알 아재비'였고,

그런 연유로 나는 '꿩의다리아재비를 만나면 그 아재비가 생각난다.

꿩의다리아재비는 높고 깊은 산에서 드물게 보이는 식물이다.

'꿩의다리아재비'라는 좀 지루한 이름은 식물체의 모습이

여름에 흰 꽃이 피는 꿩의다리'와 비슷해서 붙은 이름이다.



내게는 특별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 아재비들의 군락을

오월 어느 날 서울에서 가까운 낮은 산 계곡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 이름만으로도 정겹고 푸근한 수많은 아재비들!

 해마다 그 꽃이 필 무렵이면 그 곳을 찾아 아재비들의 사랑을 추억했다.


지금 아재비들의 시대는 잊혀지고, 핵가족시대마저 지나

스마트폰이 가족끼리 주고 받는 눈길도 빼앗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아재비는 남이 되고, 마주 앉은 부모와 친구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채

오로지 고개 숙여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이 기괴한 세태에서

나는 '꿩의다리아재비' 꽃밭 속에서 원시의 위안을 받는다


2016.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