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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1/여름과 가을사이

언제나 우리 곁을 지켜온 박하

 

 

박하

Mentha piperascens (Malinv.) Holmes

 

개울가와 습지에서 나는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60∼100cm.

줄기는 단면이 사각형이고 곧게 선다. 7~10월 개화.

잎과 줄기는 약용하고, 박하유, 박하주정의 원료로 쓴다.

한국(전역) 및 동아시아 지역에 분포한다.

[이명] 털박하, 야식향(夜息香), 번하채, 인단초(仁丹草) 등.

 

 

 

 

 

 

박하는 그 꽃의 모습보다도 향기로 더 기억되는 식물이다.

이 땅의 야생식물 중에서 그만큼 강한 향을 내는 것이 없다.

박하 향은 너무 강렬해서 음식에는 쓰지 않고,

껌, 사탕, 음료수, 담배, 은단 같은 것에 첨가제로 들어가서

입안에 청량한 자극을 준다.

 

입뿐만 아니라 타박상에 붙이거나 바르는 약품의 원료가 되어

피부의 염증을 가라앉히거나 통증을 덜어주고

활명수에도 들어가서 속까지 시원하게 한다.

나도 어렸을 적에 박하 신세를 크게 졌던 기억이 있다.

 

충치를 앓았는지 몰라도 예닐곱 살 무렵에 이가 몹시 아팠다.

할머니가 냇가에서 박하 한 줌과 흰 띠를 두른 돌 한 개를 가져 오셨다.

그것을 삶은 물을 여러 차례 입에 머금고 이 아픈 것이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박하는 염증을 가라앉히고 통증을 덜어주고,

흰띠가 있는 돌은 일종의 위약효과(placabo effect)였다.

 

 

그 무렵 나는 꽤나 잔병치레를 했지만 병원 신세를 져본 적이 없다.

약방이나 의원이 삼십 리나 떨어진 읍내에 있기도 했지만,

자질구레한 질환은 동네 안에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배앓이나 체한 것 정도는 할머니가 약손으로 다 낫게 해주었고,

옆집 할매는 침을 잘 놓고, 뒷집 할배는 뼈 맞추는 도사고

뉘 집에는 일본 친척이 보내 줬다는 귀한 금계랍(키니네)이 있고

어떤 집에서는 쉬쉬하지만 급할 때는 아편을 얻을 수 있었다.

 

치과의사는 일 년에 한두 번 등짐을 지고 동네에 나타났다.

그 상자에서 처음 보는 이상한 도구들을 꺼내서 방안에 널어놓고

어른들의 이를 빼고 금니를 만들어 주면서 며칠을 묵고 갔다.

어디서 오는지 몰라도 용하다는 침쟁이도 몇 달에 한 번씩 왔다.

그 시절에는 의료 행위에 특별한 자격증이나 면허가 없었고,

산과 들에 널려있는 모든 풀과 나무들이 여차하면 약이 되었다. 

 

그 때는 고향 동네 앞 냇가에 박하가 지천이었지만,

요즘은 키 큰 잡초들만 무성해서 박하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박하의 향기를 맡으면 잠깐의 반가움 뒤에

언제나 어릴 적 꿈같은 추억의 미로가 따라오곤 한다.

 

 

2013. 7. 29. 꽃 이야기 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