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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높고 깊은 산에서

진범으로 몰린 억울한 진교

 

진교(秦艽)

Aconitum pseudolaeve Nakai

 

높은 산에 나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40~70cm. 줄기가 모가 지고, 곧게 선다.

8~9월 개화. 길이 2~2.5cm. 뿌리를 약용한다.

한국(전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줄바꽃, 줄오독도기

*우리나라의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진범’으로 나와있으나,

북한의 정명은 ‘진교’이다.

 

 

 

 

우리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진범'으로 나온 식물이 있다.

진범이라니 이 녀석이 무슨 큰 죄라도 지었는가 하고,

농담이나 말장난을 하며 이 식물을 만나게 되었다.

 

이 식물의 원래 바른 이름은 '진교'(秦艽)였다.

진교는 비교적 높고 깊은 산에서 가을의 초입에

작은 오리들이 마주보는 듯한 귀여운 꽃을 피운다.

몇 년간 꽃을 찾아다닌 경험으로는 자주색 꽃을 피우는 진교보다는

흰색의 꽃을 피우는 흰진교를 훨씬 많이 만났고,

흰진교는 가끔 낮은 산자락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식물관련서적이나 도감을 보면

‘진범/진교’라는 두 이름을 병기(倂記)한 책도 있고,

‘진범’이나 ‘진교’, 두 이름 중 하나만 나와 있는 책도 있어서,

한자나 식물분류학에 문외한으로서는 혼돈스럽기만 했다.

 

때마침 야생화 동호회 사이트인 ‘인디카’(indica)의 칼럼을 통하여

존경하는 국어학자이시고 동호회원이시기도 한  어느 교수님께서

몇 달 동안의 연구 끝에 명쾌하게 그 유래를 밝혀 주셨다.

‘진교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그 칼럼의 뼈만 추려내면,

진범은 한자 ‘진교’秦艽를 ‘진봉’秦芃으로 오기한데서 비롯되었고,

다시 ‘진봉’의 봉‘芃’자를 누군가 그 아래쪽의 ‘凡’자에 이끌려

어림짐작으로 ‘범’으로 오독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흰진교: 진교에 비해 비스듬하게 자라며 덩굴성이다. 1m 정도 덩굴을 뻗는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진교’에서 ‘진봉’으로 헛디딘 발이

다시 ‘진범’으로 한걸음 더 큰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이 진범이라는 이름은 1937년에 발간된 ‘조선식물향명집’에서 처음 등장했고,

1920년대 이전까지의 문헌에는 진교, 또는 진규로 나와 있었다고 한다.

 

이 유래는 한 때 유행했던 유머 한 토막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생각하는 사람’을 조각한 사람이 누구냐는 주관식 시험문제에,

공부를 제대로 한 학생은 '로댕'이라는 정답을 적었다.

그 옆의 학생은 커닝을 어설프게 해서 '오뎅'이라고 썼고,

‘오뎅’을 커닝한 학생은 같은 의미로 '덴뿌라'라고 썼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이 '덴뿌라' 같은 이름,

‘진범’을 쓰고 있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2013. 6. 30. 꽃 이야기 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