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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높고 깊은 산에서

해마다 솔체꽃을 만나야겠다

 

솔체꽃

Scabiosa tschiliensis Gruning

 

깊은 산에 나는 산토끼꽃과의 두해살이풀. 높이 50~90cm.

아래에 난 잎은 타원형이나 위로 갈수록 새깃 모양으로 갈라지며

길이는 9cm 정도. 잎자루에 날개가 있고 전체에 털이 있다.

7~8월 개화. 긴 꽃줄기 끝에 머리모양꽃차례로 달린다.

한국,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체꽃

* 구름체꽃과 체꽃은 고산에 나는 솔체꽃의 변종으로 키가 작다.

 

 

 

 

 

 

 

해마다 설날이면 할머니는 처마 밑에 ‘체’를 내 걸었다.

그 때 들은 얘기로는 설날 밤 야광귀(夜光鬼)가 와서

누군가의 신을 신어보고 맞으면 그대로 신고 간다고 했다.

이 귀신에게 신을 잃은 사람은 1년 동안 운수가 나쁘다고 한다.

그런데 문 앞에 체를 걸어 두면 귀신이 밤새 체의 구멍을 세느라고

신을 신어보지 못하고 그냥 하늘로 되돌아간다고 했다. 

 

‘체’는 곡물이나 모래 등의 알갱이를 거친 것과 미세한 것으로

선별하는 데 쓰였던 중요한 생활도구였다.

체는 그 용도에 따라서 거름망(쳇불)의 재료와 망의 규격이 다양해서,

자갈과 굵은 모래를 거르는 체는 굵은 철사 그물로 눈이 아주 컸고,

음식을 만들 때 고운 가루를 걸러내는 체는 명주천을 사용했다.

 

체를 사용해서 하던 노동은 요즘에는 거의 기계가 대신하고,

가정에서는 믹서와 같은 편리한 가전제품이 체가 하던 일을 해준다.

이 ‘체’에서 ‘솔체꽃’이라는 식물의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솔체꽃은 솔방울을 닮았으면서

꽃차례가 체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서 ‘솔체꽃’이 되었지 싶다.

 

 

솔체꽃은 식물분류계통으로 볼 때는 ‘산토끼풀’과 함께

우리나라에는 2종 밖에 없는 ‘산토끼풀과’의 식물이다.

먼 조상이 국화 집안과 친척이었는지 국화꽃들과 비슷하지만,

꽃차례가 크고 성기어서 꽃과 꽃 사이에 구멍이 보인다.

그런 구멍들 때문에 ‘체’의 이름을 얻었을 것이다.

 

‘체’는 현대문명과 함께 우리 곁에서 멀어진 도구이다.

그런데 요즘 세태를 보면 사람들의 언어와 감정의 표현이

아무런 여과망을 거치지 않고 내뱉어지는듯해서

마음의 ‘쳇불’도 사라지지 않았나하는 염려가 든다.

나 역시 이러한 시대풍조에 휩쓸려서 경거망동하며

표현의 여과와 행동의 절제가 없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올 해부터는 다른 꽃들은 몰라도

솔체꽃만은 꼭 한 번씩 만나고 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마음속에 연보랏빛 ‘쳇불’을 하나 깔아 놓으려는 뜻이다.

체도 낡으면 갈아야 하니 해마다 솔체꽃을 만나고 올 일이다.

체 구멍 하나하나 세다 보면 귀신도 물러간다는데...

 

 

2013. 3. 11. 꽃 이야기 198.